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讀退陶遺書(독퇴도유서)」에 붙여 산에 언덕에 -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작과비평사 1989)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을 더듬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리운 이의 얼굴 닮은 화사한 꽃들이 산과 들에 피..
윤봉길 의사의 시 「歷歷光陰(역력광음)」에 붙여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 딜런 토머스 (류시화 옮김)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노년은 날이 저물 때 타올라야 하고 열변을 토해야 한다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하라 현명한 자들은 끝에 이르러 어둠이 순리인 줄 알지만 자신들의 말이 어떤 번개도 치지 못했기에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가 칠 때 자신들의 연약한 행위가 푸른 바닷가에서 밝게 춤출 수도 있었음을 한탄하며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한다 자유로운 자들은 날아가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했으나 태양은 간다는 슬픈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심각한 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눈이 멀지만 멀어 버린 눈도 유성처럼..
이언진의 「호동거실(衚衕居室, 골목집)」에 붙여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시)』 미래사, 2016년) 이 시는 지은이가 윤동주 선생인 줄 모르고 읽는다면 아마도 요즘 시인의 시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윤동주 선생은 당신이 살던 시대상을 그렸겠지만,..
- 두보(杜甫)의 시(詩) 「춘야희우(春夜喜雨)」에 붙여 풀 -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 시는 김수영(金洙暎, 1921년~1968년) 시인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죽기 불과 보름 전에 쓴 시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저는 이 시를 읽을 때 마치 김수영 시인의 유언을 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수영은 4.19 혁명에 환호했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민주주의가 신생 조국 대한..
- 백대붕(白大鵬) 선생의 시(詩) 「취음(醉吟)」에 붙여 흐르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 송경동 흐르는 것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를 탁류라 하고 어떤 이는 그를 한때의 격랑일 뿐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회오의 눈물 굴절과 비통의 소용돌이라고도 하겠지만 바다를 향해 지금 여울져 흐르는 것들은 저가 무엇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곳이 아무리 넓고 깊어도 머무르지 않는다 가끔 징발된 영혼들도 저만치 다시 가 물로 내린다 (송경동 시집 『꿀잠』, 2014) 요즘 주변을 보면 폭등하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투기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실직과 파산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소식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
- 상건(常建)의 시 「제파산사후선원(題破山寺後禪院, 파산사 선원에서)」에 붙여 春山(춘산) - 남덕현 하아! 큰불이 났구나 꽃불이 났구나 저 불 봄바람에 번지면 내 속 천불은 불도 아니겠구나 스님 염불은 불도 아니겠구나 삼세제불은 불도 아니겠구나 무엇으로 맛불을 놓아 저 불을 잡으랴 다 타 죽겠구나 저 불에 다 불타 죽겠구나 적요로구나 적멸이로구나 (『유랑』 노마드북스, 2016) 불이죠. 암요. 불이고 말고요. 그것도 아주 큰 불이죠. 몇 년 전 봄날 진달래로 유명한 강화도 고려산에 갔었습니다. 진달래를 보려고요. 온 산을 다 덮은 진달래 풍경은 정말 봄바람에 번진 꽃불 그 자체였습니다. 꽃피는 봄날 하루 정도는 맘의 끈을 풀고 꽃불 속에 푹 잠기는 것은 어떨까요. 남덕현 시인처럼 오로지 꽃불에 취하..
홍세태(洪世泰)의 시(詩) 「견민(遣悶, 넋두리)」에 붙여 파장(罷場)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먹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농무(農舞)』, 창작과비평사 1992) 점점 경쟁은 치열해지고, 맘 편히 기댈 친척도 벗도 멀어져가는 세상입니다. 주변 사람들과 희망을 공유하는 게 사치로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에 붙여 그대 생각 1 - 김용택 하얀 탱자꽃 꽃잎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장입니다. 푸른 보리밭에 아침 이슬 반짝입니다. 밭 언덕에 물싸리꽃은 오래된 무명 적삼처럼 하얗게 피었습니다. 세상을 한참이나 벗어 나온 내 빈 마음 가장자리 부근에 꿈같이 환한 산벚꽃 한 그루 서늘합니다. 산이랑 마주 앉을까요. 돌아서서 물을 볼까요. 꽃 핍니다. 배꽃 핍니다. 우리집 뒤안에 초록 잎 속에 모과꽃 핍니다 민들레 박조갈래 걸럭지나물 시루나물 꽃 봄맞이꽃 꽃다지도 핍니다 저 건너 산 끄트머리 돌아서는 곳 아침 햇살 돌아오는 논두렁에 느닷없이 산복숭아 한 그루 올해 연분홍으로 첫 꽃입니다. 저 작은 몸으로 꽃을 저렇게나 환하게 피워내다니요. 눈을 감아도 따라옵니다. 꽃입니다 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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