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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대붕(白大鵬) 선생의 시(詩) 「취음(醉吟)」에 붙여
흐르는 것들은 말하지 않는다
- 송경동
흐르는 것들은
제 이름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를 탁류라 하고
어떤 이는 그를 한때의 격랑일 뿐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회오의 눈물
굴절과 비통의 소용돌이라고도 하겠지만
바다를 향해
지금 여울져 흐르는 것들은
저가 무엇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곳이 아무리 넓고 깊어도
머무르지 않는다
가끔 징발된 영혼들도
저만치 다시 가 물로 내린다
(송경동 시집 『꿀잠』, 2014)
요즘 주변을 보면 폭등하는 주식과 부동산으로 투기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실직과 파산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히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소식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오로지 집값, 집값 합니다. 다수의 사람들의 이익에 맞추는,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라면 투기의 광풍 속에 정의는 묻혀버리고 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소수지만 이 순간에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말이죠. 심하면 못난이라고 손가락을 받으면서 까지요. 그들은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나 문학가일 수도 있고요,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혁명가나 개혁가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이들은 남이 자신을 뭐라 부르든 그 길을 갈 뿐입니다. 송경동의 앞의 시(詩)처럼 말입니다.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습니다. 하물며 시대를 거스르며 자신의 사명을 늘 가슴에 안고 사는 이의 고단함은 어떠하겠습니까. 동시대를 사는 이들은 마치 깊은 숲 속에 있는 것과 같아 주변을 명확히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누가 선지자인지 알기 힘듭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대의 인물들은 안개가 활짝 개인 들판처럼 분명하게 보입니다. 오늘 한시산책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의 신념을 따라 시대를 역류하며, 신분의 질곡을 넘어온 이입니다. 바로 조선시대 천민 출신 시인 백대붕(白大鵬, ?~1592년(선조 25)) 선생입니다. 먼저 그의 시 「취음(醉吟)」을 보겠습니다.
醉吟(취음)
醉揷茱萸獨自娛(취삽수유독자오)
滿山明月枕空壺(만산명월침공호)
旁人莫問何爲者(방인막문하위자)
白首風塵典艦奴(백수풍진전함노)
취하여 부르는 노래
술에 취하여 붉은 산수유 꽂고 홀로 즐기다가
빈 술병 베고 누우니 온산엔 달빛이 가득하네
지나는 이들이여 무엇하는 사람인지 묻지마오
풍진 세상에 머리 흰 전함사의 종놈이라오
때는 음력 9월(九月) 9일(九日)로 양(陽)이 겹치는 상서로운 날인 중양절(重陽節)입니다. 이 날에는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차거나 산수유 가지를 머리에 꼽고 산에 올라 국화주(菊花酒)를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백대붕 선생은 붉은 산수유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어 머리에 꼽고 국화주를 마셨나봅니다. 어느덧 술을 다 마시고 빈병만 남았습니다. 그 병을 베고 누우니 어느새 아흐레 둥글게 차오르는 달이 떠올라 온 산에 달빛이 가득합니다. 세상을 향해 고함을 지릅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전함사의 종놈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이 시의 제목은 『동유주(東遺珠)』, 『대동시선(大東詩選)』, 『소대풍요(昭代風謠)』 등에는 「9일(九日)」로, 『기아(箕雅)』에는 「취음(醉吟)」으로 되어 있습니다. 「9일(九日)」이라는 제목은 중양절의 날짜를 드러낸 것이고, 「취음(醉吟)」은 국화주를 마시는 중양절의 풍습을 드러낸 것이니 둘 다 어울립니다. 그러나 저는 「취음(醉吟)」이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듭니다.
백대붕 선생은 자(字)는 만리(萬里)로 천인 출신이라고 합니다. 효종과 현종 시대 활약한 남인의 대학자 홍여하(洪汝河, 1620년(광해군 12)~1674년(현종 15)) 선생의 문집 『목재집(木齋集)』에 의하면 백대붕 선생은 나라의 배를 만들고, 짐을 운반하는 조운선(漕運船)을 관리하던 전함사(典艦司)의 종 출신이라고 합니다. 허균(許筠)도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전함사의 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시를 지을 때에도 시에서처럼 실제로 노비였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허균의 위의 문집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백대붕 선생이 궁궐의 열쇠와 왕명의 전달을 책임을 맡은 액정서(掖庭署)의 사약(司鑰)이 되었다고 기록이 있습니다. 사약은 잡직이기는 하지만 정6품의 벼슬자리입니다. 노비이면서 벼슬을 한다는 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같은 천인으로 시를 잘 지은 유희경과 함께 유(劉)·백(白)으로 일컬어졌습니다. 같은 처지의 위항인끼리 모여 시를 짓는 모임인 풍월향도(風月香徒)를 주도하였습니다. 시와 문장으로 유명한 당대 일류 문사(文士) 허봉(許篈)이나 심희수(沈希洙) 등도 백대붕 선생을 인정하여 친구로 사귀었다고 합니다. 1590년(선조 23) 학사(學士) 허성(許筬)이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사신 갈 때 시를 잘 하는 백대붕 선생을 함께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백대붕 선생의 시는 당나라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를 배워 속되지 않고 우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따르고 본받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현재 「취음(醉吟)」, 「추일(秋日)」 두 편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추일(秋日)」을 보겠습니다.
추일(秋日)
秋天生薄陰(추천생박음)
華嶽影沈沈(화악영침침)
叢菊他鄕淚(총국타향루)
孤燈此夜心(고등차야심)
流螢隱亂草(유형은난초)
疎雨落長林(소우낙장임)
懷侶不能寐(회려불능매)
隔窓啼怪禽(격창제괴금)
가을날
가을 하늘에 옅은 그늘 생기더니
화악산은 어둑어둑 그림자 내리네
한 다발 국화꽃은 타향살이 눈물이고
외로운 등불은 오늘 밤 내마음이어라
반딧불은 풀숲을 날면서 깜빡이고
가랑비는 울창한 숲속에 떨어지네
벗이 그리워 잠을 못 이루는데
창밖에선 이름 모를 산새 우짖네
백대붕 선생의 시(詩)는 당나라 말기인 만당(晩唐)의 풍을 본떴는데 석주(石州) 권필(權韠) 같은 이는 연약하다고 평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을 따르던 이들의 시를 선생의 사약(司鑰) 벼슬을 빗대어 사약체(司鑰體)라 이름하며 낮춰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문지기체’라는 뜻입니다. 대궐 문지기였다 하여서요. 그러나 그의 시는 많은 이들이 높이 샀습니다. 이덕무(李德懋, 1741년(영조 17)~1793년(정조 17))는 「김우문(金又門)에게 드리는 만사」에서 김우문의 시 세계를 높이 사면서 김호문의 호방함이 백대붕 선생에 견줄만하다고 썼습니다.
手鈔全唐字比蠅(수초전당자비승)
詩家妙語悟良能(시가묘어오량능)
靑邱風雅行將選(청구풍아행장선)
不讓旁流白大鵬(불양방류백대붕)
깨알 같은 전당시(全唐詩) 손수 베꼈으니
시가의 현묘한 이치 스스로 깨달았도다
우리나라 시선(詩選)에 장차 들 것이니
호방(豪放)한 백대붕보다 못하지 않구나
성호 이익선생은 그의 문집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人事門)」에서 “백대붕(白大鵬)은 유희경(劉希慶)과 친한 벗으로서 시를 주고받아, 책 한 질(帙)이 되니, 당시의 경대부들이 모두 허여(許與, 인정)하였다. 학사(學士) 허성(許筬)이 일본으로 사신 갈 때에 함께 갔었다. 뒤에 (임진왜란이 나자 순변사) 이일(李鎰, 1538년(중종 33)~1601년(선조 34))이 ‘일본의 일을 잘 안다’ 하여 데리고 가다가 군사가 패하여 군중(軍中)에서 죽었는데, 그의 출신이 한미(寒微)하였기 때문에 드러나지 못하였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임진왜란 7년 전쟁 초기에 전사하였으니 그의 시들도 모두 흩어졌습니다.
유재건(劉在建, 1793년(정조 17)~1880년(고종 17))은 조선시대 탁월한 서민 308명의 전기(傳記)을 모두 모아 성격에 따라 분류한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을 남겼습니다. 시와 문장을 잘 한 이들을 모아 「문학(文學)」편으로 분류하였는데, 백대붕 선생을 네 번째, 그리고 선생의 절친 넉헌(櫟軒) 정치(鄭致, ?~?) 선생을 세 번째에 소개합니다. 여기에 정치 선생의 시 두 편이 실려 있는데, 두 번째 시 「대주초백만리(對酒招白萬里, 술잔을 놓고서 백대붕을 부르다)를 소개하겠습니다. 정치 선생도 평민이었는데, 글 잘 하기로 소문나 선조(宣祖) 임금이 특별히 종5품 내수사 별좌(別坐)에 특채하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정치 선생의 호 ‘넉헌(櫟軒)’은 요즘 통용되는 한자 사전대로라면 ‘역헌’으로 읽어야 하는데, 정치 선생의 경우 전통적으로 ‘넉헌’으로 읽어왔다고 합니다.
對酒招白萬里(대주초백만리)
我也前身過去僧(아야전신과거승)
世間名利視風燈(세간명리시풍등)
中心愛矣靑從事(중심애의청종사)
何日忘之白大鵬(하일망지백대붕)
一斗換州誠小點(일두환주성소점)
三杯通道是多能(삼배통도시다능)
北邙有塚君知否(북망유총군지부)
粉骨生苔無醉朋(분골생태무취붕)
술잔을 놓고서 백대붕을 부르다
나는야 전생에 스님이었나봐
세상 명예와 이익 바람 앞 등불로 보여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좋은 술이니
하룬들 잊으리오 나의 벗 백대붕
한말 술을 원님자리와 바꾸는 건 바보짓
석 잔 술로 도를 통하는 게 잘하는 일
북망산 무덤들을 그대 알지 않는가
뼈 삭고 이끼 끼면 술 마실 벗도 없다네
청종사(靑從事)는 청주종사(靑州從事)의 줄인 말로 좋은 술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말 술로 원님자리와 바꾼다는 것은 후한(後漢) 말기 삼국지에 나오는 십상시(十常侍) 우두머리 환관 장양(張讓)과 그에게 포도주 1말을 뇌물로 주고 양주자사(凉州刺史)가 된 맹타(孟佗)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술 한 말을 아깝게 고을 원님하고 바꾸느냐고 되묻는 것이죠. 어때요. 호방하죠?
이덕무는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은 백대붕이 왜중(倭中)의 일에 밝다고 하여 억지로 그를 데리고 갔는데, 군중(軍中)에서 죽었다.”고 백대붕의 죽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출신이 한미하여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죽었음에도 추앙받지 못했습니다. 끝으로 천한 신분적 한계를 무릅쓰고 시대를 거스르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가려고 했던 백대붕 선생을 위로하며, 아울러 오늘날 수많은 미생들을 위로하며 김종삼 시인의 시 「묵화(墨畵)」를 바칩니다.
묵화(墨畵)
김종삼 (1921~1984)
물 먹은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북치는 소년』 민음사, 1979)
2021년 4월 11일
풀소리 최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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