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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시 「歷歷光陰(역력광음)」에 붙여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 딜런 토머스 (류시화 옮김)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노년은 날이 저물 때 타올라야 하고 열변을 토해야 한다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하라
현명한 자들은 끝에 이르러 어둠이 순리인 줄 알지만
자신들의 말이 어떤 번개도 치지 못했기에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가 칠 때 자신들의 연약한 행위가
푸른 바닷가에서 밝게 춤출 수도 있었음을 한탄하며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한다
자유로운 자들은 날아가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했으나
태양은 간다는 슬픈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심각한 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눈이 멀지만
멀어 버린 눈도 유성처럼 불타며 즐거울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한다
그러므로 당신, 나의 아버지여, 그 슬프고 높은 곳에서
부디 당신의 뜨거운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시라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시라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하시라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죽음이 어떠한지 아는 이는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어 죽음의 경험을 전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죽음은 아주 상상하지 못할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죽음은 아마도 인식이 사라지고, 빛마저 소멸하는 상태가 아닐까요?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1914년~1953년)의 이 시는 임종을 맞이하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시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소멸에 분노하라’는 구절은 일차적으로 물리적인 죽음에 저항하라는 의미입니다.
“죽음에 저항하고 빛의 사라짐에 분노하라고 켈트 족의 음유시인이 촉구한다. 밀려오는 어둠에 맞서 마지막 순간까지 생을 불태우라고. 현명한 이들은 지혜로운 말을 많이 하지만 결국 자신들의 말이 세상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착한 이들은 자신들이 너무 연약하게 행동한 나머지 인생의 즐거움을 맛보지 못했음을 느낀다. 거침없이 산 이들은 시간을 함부로 보낸 것을 후회하고, 시력을 잃어 가는 심각한 사람들은 눈이 멀어도 유성처럼 불탈 수 있음을 안다. 따라서 우리는 우아하게 죽음에 끌려가는 대신 더 삶을 요구해야 한다.”
시인 류시화의 이 시에 대한 설명입니다. 나는 여기에 더할 것도 뺄 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시에 대한 설명은 류시화의 것으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죽음이란 물리적인 죽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들도 한결같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외부의 공격에 의해 또는 내부의 좌절에 의해 우리가 지키려고 했던 소중한 가치들은 수많은 위험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인은 절벽같은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외칩니다.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한시(漢詩)의 주인공은 벼랑 끝에 몰렸어도 끝내 절망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바로 유명한 독립운동가 윤봉길(尹奉吉, 1908년~1932년) 의사(義士)입니다.
歷歷光陰(역력광음)
歷歷光陰何太忍(역력광음하태인)
春光己過夏霜晴(춘광기과하상청)
禮靑洪客多情席(예청홍객다정석)
濁酒三盃一咏聲(탁주삼배일영성)
지나가는 세월
지나가는 세월은 어찌 그리 빠른가
봄바람은 이미 지나가고 여름 장마도 개었네
예산 청양 홍성의 벗들 모인 자리 다정하니
막걸리 석 잔에 한 곡조 읊조리도다
이 시는 윤봉길 의사가 23세 때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 고향의 벗들과 이별주를 마시면서 지은 시라고 합니다. ‘겨우 23세에 세월이 빠름을 한탄하다니’ 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하루 빨리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에 동참하고자 하는데 금년에도 봄이 지나고 장마마저 지났습니다. 그러니 세월이 빠르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윤봉길 의사의 불꽃같은 최후의 거사인 홍구공원(虹口公園) 폭탄 투척은 이로부터 불과 2년 뒤의 일입니다.
참고로 이 시는 선비문화기획에서 만든 유튜브에서 가져왔습니다. 선비문화기획에서 잘 번역하였기에 그대로 인용합니다. 다만 ‘역력광음(歷歷光陰)’을 ‘역력한 세월’이라고 해석한 것을 현대어에 맞게 ‘지나가는 세월’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청년제군에게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무궁화 삼천리 우리 강산에
왜놈이 왜 와서 왜 걸대나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모르는가
되놈 되와서 되가는데
왜놈은 와서 왜 아니 가나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잠자는가
동천(東天)에 서색(曙色, 새벽빛)은 점점 밝아 오는데
조용한 아침이나 광풍이 일어날 듯
피 끓는 청년 제군들아 준비하세
군복 입고 총 메고 칼 들며
군악 나팔에 발맞추어 행진하세
의거 이틀 전인 1932년 4월 27일 윤봉길 의사는 의거장소인 홍구공원을 답사합니다. 그리고 시들을 남기는데 위의 것은 조국의 청년들에게 남긴 시입니다.
드디어 1932년 4월 29일 새벽. 김구 주석은 윤봉길 의사를 만나서 방침을 전달하고 아울러 폭탄 2개를 주었습니다. 의사는 경계가 삼엄한 홍구공원(虹口公園) 안으로 곧장 들어갔습니다. 어깨에는 보온병 하나를 비껴 매고 손에는 도시락 통 하나를 들고서 태연히 군중을 밀치고 단상 앞에 서서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보온병과 도시락 통은 모두 폭탄입니다. 이날은 적국 왕 히로히토(裕仁)의 생일로, 상해에 있는 육‧해군(陸海軍)과 일본 교민이 홍구공원에 모여 전승(戰勝) 축하와 경축 대회를 거행하려 하였습니다.
아침 9시 시라카와(白川) 상해 지역 총사령관의 검열을 받으려는 제9사단, 해군 육전대(海軍陸戰隊) 총 1만 2000여 명이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기관총 부대, 기병대, 보병대, 야전포대, 탱크 부대, 철갑차 부대, 운송 부대, 중포(重砲) 부대, 고사포(高射砲) 부대, 치중대(輜重隊) 등이 있었고, 해군 철갑차 1개 부대 8대, 오토바이 부대, 구호(救護) 부대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헌병대가 줄줄이 연이어 들어왔습니다. 상해의 일본 교포들은 남녀 모두 손에 태양기(太陽旗)를 흔들며 환호하였고 우레가 진동하듯 미친 듯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두 3만여 명의 적국 사람들이 해군 군악대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개미처럼 공원에 모였던 것입니다.
단상 위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고 사면은 붉은색과 흰색의 천을 둘렀으며 위는 장막을 펼쳤습니다. 먼저 사령관인 육군 대장 시라카와가 연설하였고, 시게미쓰 공사 등이 서로 이어 연설을 하였습니다. 비행기 18대가 낮게 날며 재주를 뽐냈고, 11시 20분이 되어 행사가 끝났습니다. 시라카와 사령관, 우에다(植田) 육군 중장, 노무라(野村) 해군 중장, 시게미쓰 공사 등은 그대로 단상에 남아 있었습니다. 시게미쓰 공사가 단상 아래 일본인 학생들에게 연설하고 있었고 잠시 방비가 허술해지자 윤봉길 의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시락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내 폭탄이 터졌습니다. 가와바타 거류민 단장은 즉사하였으며, 일본군 지역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은 열흘 뒤 사망하였습니다.(내용은 독립운동가 조소앙(趙素昻, 1887년~1958년) 선생이 독립운동가 82인의 행적은 모은 문집 『유방집(遺芳集)』을 토대로 재구성하였습니다.)
강보(襁褓)에 싸인 두 병정(兵丁)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학자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 프랑스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윤봉길 의사가 중국으로 망명할 당시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인은 임신 중이었습니다. 홍구공원 의거가 있던 때에는 큰 아들은 여섯 살, 작은 아들은 세 살이었습니다. 의거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살아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조선을 위하는 용감한 투사가 되라고요.
“충신은 일에 있어서 어려움을 사양하지 않고, 의리에 있어서 위태로움을 사양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려운지 쉬운지를 따진 뒤에 행한다면 충성스럽지 않다는 것이며, 죽을지 살지를 헤아린 뒤에 움직인다면 용맹이 없다는 것입니다.”
조소앙 선생은 『유방집(遺芳集)』 서문에서 신라(新羅) 박제상(朴堤上)의 고사를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지 쉬운지, 죽는지 사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일인가 아닌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실행하는 정신은 시대를 넘어 늘 필요한 게 아닐까요.
殞命遺詩(운명유시)
時來天地皆同力(시래천지개동력)
運去英雄不自謨(운거영웅부자모)
愛民正義我無失(애민정의아무실)
愛國丹心谁有知(애국단심수유지)
죽음을 맞이하며
때 만나서는 천지도 내편이더니
운 다하니 영웅도 할 수 없구나
백성 사랑 올바른 길이 무슨 잘못이더냐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 1855년(철종 6)~1895년(고종 32)) 장군이 죽기 직전에 남겼다는 절명시(絶命詩)입니다. 번역은 소설가 김동리의 것입니다. ‘일편단심 그 누가 알리’라는 구절은 절망적인 회한을 담은 것처럼 읽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알아 줄 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녹두장군과 갑오농민혁명군이 떨쳐 일어선 모습을 보고 뭇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이 뒤따랐고, 전국적인 3.1 봉기가 일어났고 윤봉길 의사가 뒤따른 것 아니겠습니까. 가까이는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이루어 낸 민주화의 과정이 그렇기도 합니다.
항상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도 요즈음이 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물질적 풍요가 마음의 풍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비트코인 등 각종 투기뿐만 아니라 한쪽으로 기운 법과 제도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재산과 노동의 대가는 끝없이 약탈당합니다.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계급 계층은 더욱 굳어져 신분제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옳고 그름이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목소리가 크냐 작으냐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금 독립운동가가 소수로 전락하였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 빛을 주고자,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애쓰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많습니다.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시를 바칩니다. 아울러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위로를 보내면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칩니다. 시는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혁명가 김산(金山, 1905년~1938년)의 것입니다. 1930년 선배 혁명가인 한해(韓海, 1900년~1930년)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김산은 「한해 동지를 조문하며」라는 시를 바칩니다. 한해는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대회 조직위원, 조선공산당 책임비서 등으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이며 노동운동가입니다.
한해(韓海) 동지를 조문하며(7)
- 김산(최룡수 역)
아! 영별이다, 쓰러진 자여!
그대는 이슬처럼 사라졌다
나는 애처로이 주위를 살펴본다
저들의 독살스런 눈빛이 번뜩인다
아! 쓰러진 자여
어쩌면 오늘이나 내일아침
나도 그대처럼 티끌로 사라질 것이다
나는 그대와 영원히 손을 잡을 것이다
우리들이 함께 황야에 묻혔어도
우리의 뒤에는
많은 형제와 친구들이 따르리라
※ 참고 : 제목은 신동엽 시인의 시 「빛나는 강 언덕에서」에서 따왔습니다.
2021년 7월 12일(월)
풀소리 최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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