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산책 -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에 붙여 술타령 - 소야(笑野) 신천희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어때요? 어디서 본 듯한가요? 본 듯하다면 당신도 유서 깊은(?) 술꾼이라고 할만합니다. 지금은 별로 안 이보지만 예전에는 주막마다 붓글씨로 쓴 이 시를 걸어놨었으니까요. 공감은 가나요 저 시에? 저의 경우 술집에서는 전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저도 책상머리에서는 이 시가 백프로 공감되는 건 아닙니다. 그건 모르긴 몰라도 시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시를 글머리에 실은 건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술을 마시는 이유야 수없이 많겠지만, 저의 경우 외롭기 때문에 마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인정하고 인정받고 살고 싶은..
한시산책 – 유몽인 선생의 「분하(盆荷)」에 부쳐 밤길 - 임화 바람 눈보라가 친다 앞길 먼산 하늘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밤. 아 몹시 춥다. 개 한 마리 안 짖고 등불도 꺼지고 가슴 속 숲이 호올로 흐득이는 소리 도깨비라도 만나고 싶다 죽는 게 살기보다도 쉬웁다면 누구가 벗도 없는 깊은 밤을....... 참말 그대들은 얼마나 갔는가. 발자국을 눈이 덮는다 소리를 하면서 말 소리를 들 제도 자꾸만 바람이 분다. 오 밤길을 걷는 마음. 얼마나 외로우면 도깨비라도 만나고 싶을까요. 차가운 눈보라가 치고, 등불도 꺼지고, 벗도 없습니다. 앞길이나 먼 산, 심지어 하늘에도 보이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개 짖는 소리도 없으니 벗은 가까운 거리에 없을 뿐더러 가까운 시간 안에 오지도 않을 겁니다. 1930년대 말,..
이옥봉(李玉峯)의 시 「夢魂(몽혼)」에 붙여 내 사랑은 - 박재삼 한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리움이란 무엇일까요? 오늘은 사랑하는 임이 황토재 넘어 내게로 올까요? 지친 얼굴이라도 씻으려고 여울에 몸을 숙이니 흔들리는 여울 물결처럼 나도 물속에서 떨고 있습니다. 외로움에 사무친 사내에겐 등잔불 들기름 타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습니다. 성근 사립문 사이로 갈래갈래 갈..
산목련 지던 밤 - 남덕현 그대 비오면 하얀 불이 지고 나는 죽어야 지는 붉은 불이다 어느 최후의 봄날이 오고 다시 돌아와 그대에게 쓰러져 마지막 불을 당기고 가리니 우느냐, 그때에 하얀 불덩이 그깟 최후에도 활활 울겠느냐 (남덕현 시집 『유랑』 - 노마드북스, 2016년) 죽어야 지는 불은 어떤 불일까요?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득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소년에게)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좌절하라고 피조된 존재가 아니야.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 그러나 누구도 인간을 좌절하게 할 수는 없어.”(“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죽음으로 추구..
풀따기 - 김소월(金素月) 우리 집 뒷산에는 풀이 푸르고 숲 사이의 시냇물, 모래 바닥은 파아란 풀 그림자 떠서 흘러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날마다 피어나는 우리 님 생각. 날마다 뒷산에 홀로 앉아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져요. 흘러가는 시내의 물에 흘러서 내어던진 풀잎은 옅게 떠갈 제 물살이 헤적헤적 품을 헤쳐요. 그리운 우리 님은 어디 계신고. 가엾은 이내 속을 둘 곳 없어서 날마다 풀을 따서 물에 던지고 흘러가는 잎이나 맘해보아요.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미래사. 2001) 떠나간 님은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있는 곳을 몰라 찾아갈 수는 없어도 그리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님이 그리울 때면 뒷산 시내물가에 앉아 하염없이 풀을 따다 물에 띄어 보냅니다. 님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눈 - 신경림 내 몸이 이 세상에 머물기를 끝내는 날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갈 테다 나를 가두고 있던 내 몸으로부터 어둡고 갑갑한 감옥으로부터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가 땅속으로 스며 물이 되고 공중에 솟아 바람이 될 테다 새가 되어 큰곰자리 전갈자리까지 날아올랐다가 허공에서 하얗게 은가루로 흩날릴 테다 나는 서러워하지 않을 테다 이 세상에서 내가 꾼 꿈이 지상에 한갓 눈물자국으로 남는다 해도 이윽고 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때 가서 다 잊었다 해도 (신경림 시집 『낙타』, 2008 창비) 가지를 뒤흔들던 세찬 비바람 속에서도 악착같이 나무에 붙어 잎이 되고, 가지에 매달려 꽃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 상처로 남고 뒤틀린 가지와 갈라진 몸뚱이로 남았어도 그것 자체로 향기로운 꽃이고..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연해주 발해고성에서 바라본 풍경. 말을 달려 끝까지 가보고 싶습니다. 익숙한가요? 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詩)입니다. 교과서 하면 시험과 연관되어 긴장부터 되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배운 것하고 전혀 관계없는 얘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뜻이 크거나 높으면 동시대 ..
벗의 노래 - 정연복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하나의 우산 속에 다정히 밀착된 두 사람이 주룩주룩 소낙비를 뚫고 명랑하게 걸으며 사랑의 풍경을 짓는다 가파르게 깊은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이 만나서 산의 너른 품 이루어 벌레들과 새들과 짐승들 앉은뱅이 풀들과 우람한 나무들 그 모두의 안식처가 된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生)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그대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사람은 홀로라면 어쩌면 꽃잎처럼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여린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하루 생존의 고단함 때문만은 아니지요. 우주의 광활함과 무한한 시간을 인식한다는 것도 홀로 견디기 힘든 존재적..
- Total
- Today
- Yesterday
- 서대문구_노동자종합지원센터
- 강매석교
- 냉이꽃
- 대온실 매화
- 보광사임도
- 마장저수지 출렁다리
- 안산방죽
- 이고운횟집
- 창경궁 대온실
- 연희숲속쉼터
- 호수공원_복수초
- 전국노동조합협의회
- 서울운수노동자협의회
- 서운노협
- 출렁다리
- 사가 1박2일 여행
- 서대문구_노동네트워크
- 전태일_따라_걷기
- 별꽃
- 물의 도시 춘천
- 큐슈 사가
- 행주산성역사누리길
- 소양강 안개
- 사가(佐賀)
- 삼악산 케이블카
- 2021년_노동절
- 전노협
- 이한열기념관
- 행주누리길
- 벚꽃마당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