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산대사(西山大師) 시(詩) 「청허가(淸虛歌)」에 붙여 작은 신이 되는 날 - 김선우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 먼지 한점인 내가 먼지 한점인 당신을 위해 기꺼이 텅 비는 순간 한점 우주의 안쪽으로부터 바람이 일어 바깥이 탄생하는 순간의 기적 한 티끌이 손잡아 일으킨 한 티끌을 향해 살아줘서 고맙다, 숨결 불어넣는 풍경을 보게 되어 말할 수 없이 고마운 날 (김선우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먼지 한 점인지 모릅니다. 티끌 한 점인지도 모르고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비추어야만 드러나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대가 내 마음을 비추어주었을 때 나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선생의 한시 「도중(途中, 길 위에서)」에 붙여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시집 『그 여자네 집』, 창작과비평사, 1998)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상실은 어떤 걸까요. 자신의 일부를 도려내는 아픔일까요. 설움에 복받쳐 살얼음도 도랑도 보이지 않습니다. 걷다 보니 발이 젖어 있을 뿐입니다. 이를 악물고 또 악물었지만, 사람이 없는 선운사 뒤편 한적한 곳에 이르니 눈물이 납니다. 요즘 울고 싶은 이들 많을 겁니다. 울고 싶다면 한번 마음껏 ..

- 조경(趙絅) 선생의 시 「금우(今雨)」에 붙여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에서 온 생존자들」을 들으며 - 황동규 죽음 앞에서 파괴되지 않는 것은 아름답다. 전쟁 영화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죽는 인간들은 아름답다. 무너질 듯 무너질 듯 범람하지 않고 흐르는 견고한 그대 12음 기법, 그 속을 걸어서 발광체(發光體)가 되는 저 긴 인간 꾸러미. ‘무너지지 않고 죽는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잠깐 시의 첫 구절 ‘파괴되지’를 ‘포기하지’로 바꿔보았습니다. ‘포기하지’라는 말을 놓았을 때에는 조금일지언정 ‘포기’의 가능성이 있는 표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파괴되지’라는 말을 놓았을 땐 ‘포기’의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는, 그래서 어떠한 외압이 닥쳐도 꺾을 수 없는, 다른 생각이 일체 없는 돌처럼 강고함이 보입..

보우(普雨) 스님의 시 「등오도산(登悟道山)」에 붙여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 김 용 택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만가만 가서 내립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에게 가 닿고 싶어요 아침부터 눈이 와 내리는 눈송이들을 따라가 보며 당신이 더 그리운 날 그리움처럼 가만가만 쌓이는 눈송이들을 보며 뭔가, 무슨 말인가 더 정다운 말을 드리고 싶은데 자꾸 불어나는 눈 때문에 그 말이 자꾸 막힙니다 눈 오는 날 그리운 추억이 있었나요. 눈이 오니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아니면 ‘당신’이 그리워지는 것이..

이인형(李仁亨) 선생의 시(詩) 「설리청송(雪裏靑松)」에 붙여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참 오래 보게 되는 시입니다. 오래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가능하다면 긴 여백을 남기고 다음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말 가능하다면... 강물의 마음이 그런 거였군요. 세찬 강물의 소리가 그런 몸부림이었군요. 얼음으로 제 몸을 덮는 것이..

장혼(張混) 선생의 시 「答賓(답빈)」에 붙여 옛길에서 눈을 감다 - 곽효환 어느새 꽃은 지고 울울창창 초록만 우거진 거대한 협곡 아스라한 절벽에 옛길이 있다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곳에 사람 하나 말 한 마리 줄지어 간신히 지났을 길을 내고 그 길로 떠나고 그 길로 돌아온 얼굴이 검은 옛사람 그 사람 간 곳이 없다 물오른 아름드리 버드나무 그늘에 들어 이 길에서 피고 진 오랜 날들을 헤아렸다 질끈 눈 감으니 아득히 물소리 흐르고 길을 버리니 다시 길이 열린다 스스로 깊어지고 스스로 부드러워지는 강과 산과 들과 나무들...... 하여 더는 가지 않기로 했다 (곽효환 시집 『슬픔의 뼈대』, 문학과지성사 2017) 곽효환 시인은 아마도 차마고도에 가서 이 시를 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된..

- 정수동(鄭壽銅)의 시 「作詩有感(작시유감)」에 붙여 강가에서 - 남덕현 물결 하나 강 건너 오는 것을 물새 하나 강 건너 가는 것을 바람 하나 강물에 스쳐 젖는 것을 무엇 하나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나는 졸다만 돌아간다 (남덕현 시집 『유랑』 노마드시선, 2016) 나는 오래 전부터 정수동(鄭壽銅, 1808년(순조 8)~1858년(철종 9))의 시(詩)로 한시산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정수동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시인이자 재담꾼이었습니다. 대 천재였지만 중인(中人)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끝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습니다. 현실 한계에 좌절한 그는 폭음(暴飮)을 일삼았습니다. 그 사이 때로는 시(詩)로 울분을 풀고, 때로 재담(才談)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정수동에 대해 연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시 「율정별(栗亭別, 율정의 이별)」에 붙여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 곽효환 어깨에 기대어 재잘대던, 가슴속으로 끝없이 파고들 것만 같던 너를 보내고 홀로 텅 빈 옛 절터에 왔다 날이 흐리고 바람 불어 더 춥고 더 황량하다 경기도의 끝, 강원도의 어귀, 충청도의 언저리를 적시고 흐르는 남한강 줄기 따라 드문드문 자리 잡은 사지(寺址)의 옛 기억은 창망하다 숨 쉴 때마다 네 숨결이, 걸을 때마다 네 그림자가 드리운다 너를 보내고 폐사지 이끼 낀 돌계단에 주저앉아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내가 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소리 내어 운다 떨쳐낼 수 없는 무엇을 애써 삼키며 흐느낀다 아무래도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 홀로 지키는 빈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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