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허정(虛靜) 대사의 시 「임종게(臨終偈)」에 붙여 사랑은 2 - 이정하 사랑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오직 바다에게로만 달려가는 강물이 되는 일이다. 강물이 되어 너의 바다에 온전히 제 한 몸 내주는 일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탓하지 않고 온몸으로 강물을 맞이하는 바다가 되는 일이다. 바다가 되어 먼 길을 달려온 너를 포근히 감싸주는 일이다. 사랑은, 그리하여 하나가 되는 일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털끝 하나라도 남기지 않고 너에게 주어, 나를 버려 너를 얻는 일이다. (이정하 시집 『편지』, 책만드는집, 2013년) 삶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일까요. 사랑일까요? 만약 사랑이라면,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까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오로지 ..

- 이옥(李鈺)의 이언(俚諺, 민요풍 노래)에 붙여 몸의 중심 - 정세훈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몸의 중심은 어디일까. 생각하는 뇌? 숨 쉬는 폐? 피 끓는 심장? 정세훈 시인은 뇌도 폐도 심장도 아니라고 한다. 몸의 중심은 마음이 가는 곳이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이다. 그렇다면 시가 갈 곳, 사람이 갈 곳도 아픈 곳, 상처 난 곳 아닐까? 아픔에 다가가듯 인간의 감성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게 시(詩)라고 주장한 조선시대 시인이 있다.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1760년(영조 36)~1..

이산해 선생의 시 「산중(山中, 산속에서)」에 붙여 마지막 사랑 - 남정림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두세요 모든 화려함이 떠난 쓸쓸한 자리에 그대 나와 함께 머물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떠난 외로운 자리에 그대 나와 함께 꿈꿀 수 있나요? 사랑스러움마저 허물어져도 그대 안의 사랑의 빛으로 마지막 사랑을 켤 수 있나요? (남정림 시집 『사랑, 지구 너머의 계절』 모악, 2021년) 사랑이란 누군가가 사랑의 빛으로 상대를 비출 때 비로소 나타나는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달처럼 말입니다. 내 사랑의 빛은 얼마나 될까요. 내가 받는 사랑의 빛은 얼마나 될까요. 받는 사랑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아 그믐달처럼 내 존재가 묻힌다 해도 내 안의 사랑의 빛을 토해낼 수 있을까요. 남정림 시인의 절..

석주(石洲) 권필(權韠) 선생의 시 「궁류시(宮柳詩)」에 붙여 무인도 - 김미정 어디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느냐 어둠을 밀고 가는 차가운 도시 불빛 엎드려 갈 곳을 몰라, 가도 가도 바닥뿐 그 바닥 핥고 가는 왜바람 소리더냐 머리맡 흔들고 간 엇갈린 수신호에 멀어져 가는 눈길과 돌아누운 그림자 역 광장 가로질러 때 이른 꽃샘이냐 손가락 사이사이 검푸른 풍랑 일어 출항을 꿈꾸는 저 몸결, 어둠살을 더듬어 (김미정 시집 『슬픔의 뒤편』 문학의전당, 2022) 수많은 발길이 엇갈리는 도시의 밤거리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바닥만 바라보며 걸을 뿐입니다. 휘황한 불빛이 빛나고, 수없는 차량이 몰려다녀도 나와 연결될 것이 하나도 없고, 가야할 곳도 정할 수 없다면 여기가 무인도나 무에 다르겠습니..

성삼문 선생의 「자미화(紫微花)」에 붙여 구월 - 나태주 구름이라도 구월의 흰구름은 미루나무의 강언덕에 노래의 궁전을 짓는 흰구름이다 강물이라도 구월의 강물은 햇볕에 눈물 반짝여 슬픔의 길을 만드는 강물이다 바라보라 구월의 흰구름과 강물을 이미 그대는 사랑의 힘겨움과 삶의 그늘을 많이 알아버린 사람 햇볕이 엷어졌고 바람이 서늘어졌다 해서 서둘 것도 섭섭할 것도 없는 일 천천히 이마를 들어 구름의 궁전을 맞이하세나 고요히 눈을 열어 비늘의 강물을 떠나보내세. (나태주 시집 『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서울문화사, 2020) 구월은 가을이 시작되는 달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시원해지는 철은 아니죠. 그래도 가을의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제가 느끼는 가장 큰 가을의 전조는 그늘이 짙어지는 겁니다. 그..

상월대사(霜月大師)의 시 「파근용추춘영(波根龍湫春詠)」에 붙여 편히 잠들려면 몸을 바꿔야만 해 (구름에게 배운 것) - 김선우 구름이면서 구름들이지 지금의 몸을 고집하지 않지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스미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지 두려움 없이 흩어지며 무너지고 사라지는 게 즐거운 놀이라는 듯 다시 나타날 땐 갓 태어난 듯 기뻐하지 그게 다지 곧 변할 테니까 편히 잠들기 위해 몸을 이동시키는 법을 나는 구름에게서 배웠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도 그러니 즐거이 변해가는 것 내가 가진 의지는 그게 다지 (김선우 시집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 잠은 편이 자나요? 혹시 잠을 깊이 못 자는 분이 있다면 김선우의 이 시가 더 눈에 뛰겠죠? 김선우 시인처럼 편히 잠들기 위해 구름에게 배워볼까요. 구름은 두려..

- 매천 황현 선생의 시 「절명시(絶命詩)」에 붙여 유랑 - 남덕현 어둠 속으로 길이 길을 접으면 외길에서도 나는 길을 잃어 힘없는 별빛이나 기다렸다가 무릎이 쓸쓸히 다 울 때까지 마저 떠돌아야지 (남덕현 시집 『유랑』, 노마드북스 2016) 깜깜한 밤입니다. 길조차 길을 감추는 아주 깜깜한 밤입니다. 갈 길이 정해진 외길이 분명하지만, 길을 잃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힘없는 별빛이라도 나온다면 그 희미한 빛에라도 의지해 걸으렵니다. 무릎이 더 이상 걷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때까지.. 걸으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한시의 주인공은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년(철종 6)∼1910년) 선생입니다. 남덕현 시인의 시 「유랑」처럼 끝까지 가려고 한 길은 분명하였지만, 이..

사명대사의 시 「증연장로(贈蓮長老)」에 붙여 호수 - 문태준 당신의 호수에 무슨 끝이 있나요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한 바퀴 또 두 바퀴 호수에는 호숫가로 밀려 스러지는 연약한 잔물결 물위에서 어루만지는 미로 이것 아니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문태준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2018) 어렸을 때였습니다. 하나 둘 셋 넷. 할머니에게서 백까지 세는 걸 배웠습니다. 거기까지만 배웠으면 좋았으련만, 그만 그 다음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백이 백 번 모이면 만이 되고, 만이 만 번 모이면 억이 되고, 억이 만 번 모이면 조가 되고, 조가 만 번 모이면 경이 되고.. 그러면 끝은? ‘경’이라는 숫자도 아득했지만 ‘끝’이라는 단어는 더욱 아득했습니다. 그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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