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남경림 네가 반짝이는 것은 어둠과 함께 머무르기 때문이다 너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캄캄한 밤에 가장 빛난다 네 가슴의 별은 별 숲을 사각사각 거닐며 주운 별빛을 나누는 너의 지혜 네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차마 어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랑 때문이다 그렇군요. 어둠이 있기에 별이 빛나는 것이군요. 빛과 어둠이 서로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남경림 시인의 이 시에서 또 위로를 받는 시어는 ‘차마’입니다. ‘차마’의 사전적인 의미는 ‘애틋하고 안타까워서 감히’ 또는 ‘애틋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서’입니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욕망의 충족을 위해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은 극단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지만, 우리는 여..
완화삼(玩花衫) - 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七百里(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趙芝薰, 1920-1968)의 이 시는 국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합니다.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살던 문학청년 지훈은 1942년 봄 문득 박목월(朴木月, 1916-1978)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지훈은 목월을 한 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다만 둘은 1939년 『문장(文章)』의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 인연만 있을 뿐입니다. 『문장(文章)』은 1939년 김연만이 민족문학의 계승과 발전을 위하여 ..
얼굴 - 박인희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른다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 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전설적인 옛 노래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를 불렀던 가수 박인희는 시인이기도 합..
그리움 - 용 혜 원 그대 이름만 부르고 싶었습니다 어디서나 그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대 얼굴만 떠 올랐습니다 모란입니다. 양귀비의 상징이기도 한 이 꽃은 현종이 화단에 남겨두었다고 해서 어류화(御留花)라고도 합니다. 엄혹한 독재시대를 경험한 세대에겐 ‘충(忠)’이라는 글자에 대한 반감이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그랬고요. 그러다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유학자들은 ‘진기지위충(盡己之謂忠)’이라고 충성 ‘충(忠)’을 정의합니다.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서 다른 생각이 스며들 틈이 없는 것이 ‘충’입니다. ‘순수’ 그 자체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용혜원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보면, 그대 이름만 부르고, 그대 목소리만 들려오고, 그대 얼굴만 떠오..
여울 - 문태준 축축한 돌멩이를 만나 에돌아 에돌아나가는,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어라 문득 멈추어 돌이끼로 핀, 물이 그리워하는 소리를 들어라 사랑하는 이여, 처음도 끝도 없는 이 여울이 나는 좋아라 혀가 굳고 말이 엇갈리는 지독한 사랑이 좋아라 손아귀에 움켜쥐면 소리조차 없는, 메마른 물의 얼굴이어도 좋아라 그렇군요. 지독한 사랑을 하면 혀가 굳고 말이 엇갈리는군요. 시인의 이 구절을 보면서 나는 문득 제대로 말도 못하고 바보처럼 떠나보낸 옛사랑이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때 내가 지독한 사랑을 했었으니 말입니다. 계곡의 또랑 여울 오늘 소개할 사랑 이야기는 당나라 시대 설도(薛濤)와 원진(元稹)의 이야기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 낯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래 시는 낯설지 않을 겁니..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 중략 -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나뭇잎 밟는 소리 하나도 너일 것 같다 얼마나 간절하면 이럴까요. 얼마나 사랑하면 이럴까요. 미리 가 기다리는 나는 모든 발자국,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너’인 듯 다가오니까요. 더욱이 기다리는 동안 나의 혼은 이미 너에게 가고 있습니다. ..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 배연일 아카시아 향내처럼 5월 해거름의 실바람처럼 수은등 사이로 흩날리는 꽃보라처럼 일곱 빛깔 선연한 무지개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휘파람새의 결 고운 음률처럼 서산마루에 번지는 감빛 노을처럼 은밀히 열리는 꽃송이처럼 바다 위에 내리는 은빛 달빛처럼 사랑은 그렇게 오더이다 이 시를 만난 건 제게 행운이었습니다. 시를 보면서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 어린 추억이 가득 담긴, 여전히 맑은 시냇물에 손을 담근 느낌입니다. 그래. 사랑은 그렇게 왔었지. 이번 가을에는 서산마루에 번지는 감빛 노을처럼 오는 사랑을 놓치지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가슴 속에 사랑을 담을 그릇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그릇 크기만큼만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
여름 일기 2 - 이해인 사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다는 젊은 벗이여 나는 오늘 달고 맛있는 초록 수박 한 덩이 그대에게 보내며 시원한 여름을 가져 봅니다. 한창 진행중이라는 그대의 첫 사랑도 이 수박처럼 물기 많고 싱싱하고 어떤 시련 중에도 모나지 않은 둥근 힘으로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기를 해 아래 웃으며 기도합니다. 고양시 방아깨비텃밭 수박. 텃밭지기 신희곤 선생이 손수 찍어서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종교인의 시를 일단 제쳐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정서에 잘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해인 수녀의 이 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바람과 이런 기도라면 저도 함께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았던 기억은 사랑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물기 많고 싱싱하고 둥그런 사랑을 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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