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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산책 - 이백(李白)장진주(將進酒)에 붙여

 

 

술타령

- 소야(笑野) 신천희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

 

 

어때요? 어디서 본 듯한가요? 본 듯하다면 당신도 유서 깊은(?) 술꾼이라고 할만합니다. 지금은 별로 안 이보지만 예전에는 주막마다 붓글씨로 쓴 이 시를 걸어놨었으니까요. 공감은 가나요 저 시에? 저의 경우 술집에서는 전적으로 공감이 됩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저도 책상머리에서는 이 시가 백프로 공감되는 건 아닙니다. 그건 모르긴 몰라도 시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시를 글머리에 실은 건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술을 마시는 이유야 수없이 많겠지만, 저의 경우 외롭기 때문에 마시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인정하고 인정받고 살고 싶은 건 인지상정 아닐까요? 서로가 그런 마음이라면 거리낌 없이 사랑하고, 거리낌 없이 인정하며 살면 될 터인데, 그게 잘 안 되죠. 언어의 한계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선입관 말고도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 자체로 다가서는 것을 방해하는 가림막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다 문득 거리낌 없이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를 만나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그게 일상에서 어디 쉽나요.

 

 

좋은 벗들과 함께 하는 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입니다.

 

 

 

 

술이라는 게 묘해서 타인을 향한, 세상을 향한 무장을 해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너나없이 서로에 대한 무장을 해제하니 속마음이 드러나기 쉽지요. 그러다 보면 자신과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동류(同類)를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술이 없다면 이런 기회는 쉽지 않았겠지요. 그러니 술 사 먹지 옷 사 입겠어요?

 

이렇게 서설(序說)이 긴 이유는 오늘 술에 관한 한시(漢詩)를 소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을 연결시키면 누구보다도 이백(李白, 701~762)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를 가리켜 술의 신선 주선(酒仙)’이라고도 하죠.

 

 

將進酒(장진주)

 

君不見(군불견)

黃河之水天上來(황하지수천상래)

奔流到海不復回(분류도해불복회)

君不見(군불견)

高堂明鏡悲白髮(고당명경비백발)

朝如青絲暮成雪(조여청사모성설)

人生得意須盡歡(인생득의수진환)

莫使金樽空對月(막사금준공대월)

天生我材必有用(천생아재필유용)

千金散盡還復來(천금산진혼복래)

烹羊宰牛且爲樂(팽양재우차위락)

會須一飲三百杯(회수일음삼백배)

岑夫子(금부자)

丹丘生(단구생)

將進酒杯莫停(장진주배막정)

與君歌一曲(여군가일곡)

請君爲我傾耳聽(청군위아경이청)

鐘鼓饌玉不足貴(종고찬옥부족귀)

但願長醉不復醒(잔원장취불복성)

古來聖賢皆寂寞(고래성현개적막)

惟有飲者留其名(유유음자유기명)

陳王昔時宴平樂(진왕석시연평락)

斗酒十千恣歡謔(두주심천자환학)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

徑須沽取對君酌(경수고취대군작)

五花馬(오화마)

千金裘(천금구)

呼兒將出換美酒(오아장출환미주)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장진주(將進酒)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결 하늘로부터 내려와

굽이쳐 흘러 바다 이르면 돌아오지 못하는 걸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고광대실에서도 거울 속 백발 슬퍼함을

아침에 검은 머리 저녁엔 눈처럼 희였나니

뜻대로 될 땐 인생 마음껏 즐길지니

황금술통 달빛 아래 홀로 두지 말게나

재주 쓸 곳 있어 하늘이 날 낳았고

천금은 다 쓰면 또 다시 들어온다네

양 삶고 소 잡아 또 한 번 놀아보세

한 번 모여 마신다면 모름지기 삼백 잔은 마셔야지

잠부자여

단구생아

술을 권하노니 잔을 멈추지 말게나

그대 위해 노래 한 곡조 부를테니

나를 위해 귀 기울여 들어보게나

풍악과 맛나는 음식 뭐가 귀한가

다만 오래도록 취해 깨어나지 말기를

예부터 성현들 모두 사라져 없어지고

오직 술 좋아하는 이들 이름만 남았네

옛날 진왕(陣王)이 평락전에서 연회할 때

한 말에 만 전들이 술로 질펀하게 즐겼었지

주인이 어찌하여 돈이 없다 말하는가

얼른 술 사와서 그대들과 마셔야지

화려한 준마와

천금짜리 갖옷을

아이에게 좋은 술로 바꿔오게 해

우리 모두 만고 시름 녹여 보구려

 

 

장진주(將進酒)’술을 권한다는 뜻입니다. 술을 권하는 노래 즉 권주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민중이 부르던 노래(시)를 모으는 관청 악부(樂府)’가 있었고, 여기서 모은 시(노래가 곧 시였으므로)를 악부시(樂府詩)라고 하였습니다. 일종의 민요였기 때문에 형식과 내용에서 좀 더 자유로웠나 봅니다. 이백은 악부시의 형식을 빌려서 호방하게 노래했습니다.

 

스케일은 무척 크지만 내용은 이해하기 쉽습니다그래도 몇 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일음삼백배(一飲三百杯)’는 한()나라 말기의 대학자 정현(鄭玄, 127~200)의 고사에서 따온 것입니다. 삼국지초반부에 조조(曹操, 155~220)라이벌이었던 원소(袁紹, ?~202)가 정현을 초대했습니다. 정현이 떠나려 하자 원소는 지역의 문인(文人) 3백여 명을 초대하여 송별연을 열었습니다. 원소는 정현을 바로 보내기 싫어 문인들에게 한 잔씩 술을 권하도록 하였습니다. 정현은 3백여 잔의 술을 마시고도 흐트러짐이 전혀 없었답니다.

 

岑夫子(금부자)丹丘生(단구생)은 잠훈(岑勛)과 원단구(元丹丘)라는 분으로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였던 분이라고 합니다. 모두 이백이 자주 어울렸던 벗이었다고 합니다. ‘선생을 뜻하는 부자(夫子)’를 쓴 것으로 보아 잠훈은 이백보다 나이가 위인가 봅니다. 그리고 진왕(陣王)은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曹植, 192~232)입니다. 귀공자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하였으니 그가 베푸는 잔치는 늘 질펀했겠죠.

 

 

2013년 5월 3일 송강문학축제를 마치고 송강문학관 뒤편 복사꽃 꽃그늘 아래서 벗들과 한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쌀쌀해서 꽃가지를 꺾어 이웃에 있는 술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모여 앉아 먹고 마시고 떠들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길 기원합니다.

 

 

한시(漢詩)에서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를 얘기할 때 늘 짝지어 나오는 게 이하(李賀,791~~817)장진주입니다. 이 시도 악부시(樂府詩)고요. 손정섭 선생의 번역으로 보겠습니다.

 

 

將進酒(장진주)

 

琉璃鍾琥珀濃(유리종호박농)

小槽酒滴真珠紅(소조주적진주홍)

烹龍炮鳳玉脂泣(팽룡포봉옥지읍)

羅幃繡幕圍香風(나위수막위향풍)

吹龍笛擊鼉鼓(취용적격타고)

皓齒歌細腰舞(호치가세요무)

況是青春日將暮(황시청춘일장모)

桃花亂落如紅雨(도화난락여홍우)

勸君終日酩酊醉(권군종일명정취)

酒不到劉伶墳上土(주부도유령분상토)

 

장진주(將進酒)

 

유리잔엔 찰랑찰랑

진한 호박빛

술통에서 듣듣는 건

빨간 진주알!

() 삼고 봉() 굽느라

지글거리고,

비단병풍 수휘장에

감도는 향풍(香風)...

 

용피리 불고,

악어북 쳐라!

하얀 잇바디에

노래 흐르고

가는 허리들

덩실거린다.

 

하물며 이 청춘

저물려는데,

복사꽃도 붉은 비로

흩지는 것을!

우리 종일 곤드레로

마시자꾸나!

유령도 죽고 나니

그만일레라!

(손정섭 역, 노래로 읽는 당시(唐詩), 김영사)

 

 

유령(劉伶, 221~300)삼국지 후반부에 나오는 위()나라 진()나라 시절에 활동했던 문인(文人)입니다. 사마의(司馬懿) 일족이 권력을 차지하여 국정을 전횡하자 대나무숲에 들어가 은거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명입니다. 술을 너무 좋아하여 주귀(酒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하(李賀)는 당()나라의 몰락한 황족(皇族)입니다. 어려서부터 시를 짓는 등 천재로 소문이 났었습니다. 당대 대학자 한유(韓愈)의 추천으로 과거시험을 보려고 하였으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험을 거부당합니다. 아버지 이름이 진숙(晉肅)인데 과거 급제자를 가리키는 진사(進仕)자 발음이 같다고 하여 피휘(避諱)에 저촉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급제를 하여 진사가 되면 신분에 '진'자를 써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게 되고 이것이 불효라는 이상한 논리였습니다. 당시는 당()나라 말기로 사회는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백이 천재(天才)로 불리고,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립니다. 그의 시가 매우 뛰어난 것을 귀신같은 솜씨로 찬양해서 붙인 별명이랄 수 있습니다. 반면 인간의 세계도 저승의 세계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시세계를 표현한 별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27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하(李賀) - 사진 : 위키백과

 

 

술을 권하는 노래하면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중종 31)~1593(선조 26))의 사설시조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장진주사(將進酒辭)

 

한 잔()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에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우러녜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파람 불제 뉘우친들 엊지리

 

 

마지막 구절에 나오는 '잔나비 파람'은 한 때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원숭이 휘파람'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숲에 무슨 원숭이가 있느냐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이게 진짜 원숭이 휘파람이 아니라 겨울철 빈 가지들 사이로 센 바람이 불 때 원숭이 휘파람과 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걸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청구영언에 보면 이 시조를 이백과 이하의 장진주(將進酒)를 모방하였다고 하면서도 뜻이 통달하고 글귀가 서글프니 만일 옛날 맹상군(孟嘗君)이 이 가곡을 들었다면 눈물을 흘렸을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사랑이 그리운 날 그리움 더욱 짙어지라고 혼자 마십니다.

 

 

어떨 때 술이 가장 맛있나요? 저는 좋은 사람하고 마실 때 가장 맛있습니다. 그렇다고 늘 좋은 사람을 벗하여 마실 수 있는 건 아니지요. 때로는 홀로 마셔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시인 박시교는 사랑하는 이를 그리면서 홀로 술을 마셨나봅니다. 혼자 마시면 그리움이 더욱 짙어진다는데, 그리워서 마시면서 그 그리움이 더욱 짙어지면 어이하나요. 박시교의 독작(獨酌)을 보면서 사랑하는 이와, 그리운 벗과 꽃피는 봄날 꽃그늘 아래서 질펀하게 마시는 꿈을 그려봅니다.

 

 

독작(獨酌)

- 박시교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랑이

그리운 날

, 미치게

그리운 날

내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박시교 독작(獨酌), 도서출판 작가)

 

2020년 12월 9일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