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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봉(李玉峯)의 시 「夢魂(몽혼)」에 붙여
내 사랑은
- 박재삼
한빛 황토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만 갈래.
여울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춰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리움이란 무엇일까요? 오늘은 사랑하는 임이 황토재 넘어 내게로 올까요? 지친 얼굴이라도 씻으려고 여울에 몸을 숙이니 흔들리는 여울 물결처럼 나도 물속에서 떨고 있습니다. 외로움에 사무친 사내에겐 등잔불 들기름 타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습니다. 성근 사립문 사이로 갈래갈래 갈라지는 달빛처럼 시름만 천 갈래 만 갈래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임은 오지 않는데, 해는 넘어갑니다. 그래도 기다리는 마음이 있다는 건 축복이겠죠.
비록 첩(妾)자리였지만 당대의 문사(文士)로 이름 높던 조원(趙瑗, 1544년(중종 39)~1595년(선조 28)이라는 원하는 낭군을 맞아 알콩살콩 살았지만 끝내는 버림받았던 슬픈 여인이 있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낭군 조원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그 비극의 주인공은 바로 허난설헌(許蘭雪軒)과 쌍벽을 이루는 여류시인 이옥봉(李玉峯)이며 이번 한시산책의 주인공입니다. 시를 볼까요.
寧越途中(영월도중)
五日長干三日越(오일장간삼일월)
哀辭吟斷魯陵雲(애사음단노릉운)
妾身亦是王孫女(첩신역시왕손녀)
此地鵑聲不忍聞(차지견성불인문)
영월에서
닷새거리 먼 길을 사흘 만에 넘어서니
슬픈 노래 노릉(魯陵)의 구름 속에 오락가락하네
이 몸 또한 왕실의 후예임이 분명하니
이곳 두견새 우는소리 차마 듣지 못하겠네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년(선조 2)~1618년(광해군 10))은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이 시는 남편을 따라 진주부(眞珠府)로 가는 길에 노산묘(魯山墓)를 지나면서 지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몹시 맑고 강건하여, 거의 아낙네들의 연지 찍고 분 바르는 말들이 아니다.’라고 극찬합니다. 진주(眞珠)는 삼척(三陟)의 다른 이름입니다. 삼척부사(三陟府使)로 발령받은 남편 조원을 따라 영월을 지날 때 지은 시가 바로 위의 시입니다. 노산묘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의 장릉(莊陵)을 말합니다. 장릉이란 능의 이름은 단종이 완전 복권된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肅宗) 때 지어진 것으로 허균이 살았던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宣祖)나 제15대 임금 광해군(光海君) 시절에는 노산묘, 또는 노릉(魯陵)으로 불렸습니다.
이옥봉의 본래 이름은 숙원(淑媛)이고, 옥봉(玉峯)은 스스로 지은 호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총명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문자를 알려주었고, 딸을 매우 사랑해 매년 책을 사다 주었습니다. 총명한 이옥봉은 일취월장했습니다. 특히 시(詩) 공부에 힘써 일가를 이루는 경지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제 글 잘 하는 선비를 배필로 맞이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그에게 신분상 한계가 있습니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別集)』에 있는 기록에 의하면 이옥봉은 옥천 군수 이봉(李逢)의 천첩의 자식인 얼녀(孽女)라고 합니다. 그가 살던 선조 임금 시대는 얼녀가 양반 사대부 선비와 결혼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서자(庶子)나 얼자(孼子)는 모두 첩의 자식이지만 엄격한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에는 신분 차이가 컸다고 합니다. 서자는 엄마가 양인(良人)이고, 얼자(孼子)는 엄마가 천인(賤人)이기 때문입니다. 얼자는 보통 엄마가 종이나 기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옥봉의 엄마는 기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옥봉의 고향이 충북 옥천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봤을 때 부친 이봉이 옥천 군수 시절 기생을 첩으로 삼아 낳은 딸이 아닌가 합니다.
이옥봉의 단소. 무덤이 없어서 파주 광탄면 임천(林川) 조씨(趙氏) 선영 남편 조원(趙瑗)의 무덤 아래 제사 지내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이옥봉은 비록 첩(妾)자리일지라도 아무하고나 결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글 잘 하는 선비 조원(趙瑗)을 알게 되었고,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사시에 장원 급제하고 과거에 올라 앞날이 창창했던 조원은 첩을 얻어 남들의 구설에 오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옥봉의 부친이 손수 찾아가 딸을 첩으로 삼을 것을 요청해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부친은 조원의 장인인 판서(判書)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합니다. 결국 이준민의 설득으로 조원은 옥봉을 첩으로 맞이합니다. 삼척 시절에 쓴 것으로 보이는 시 한 수를 더 볼까요.
卽事(즉사)
柳色江頭五馬嘶(유식강두오마시)
半醒半醉下樓時(반성반취하루시)
春紅欲瘦臨粉鏡(춘홍욕수임분경)
試寫纖纖却月眉(시사섬섬각월미)
낭군이 오시는 것 같아
버들 자란 강 머리에 오마가 히힝 우니
반쯤 깨고 반쯤 취해 누각 내려오는 때네
봄꽃 지려 하기에 거울 앞에 앉아서는
한번 슬쩍 가느다란 눈썹을 그려 보네
오마(五馬)는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지방 수령이 타는 수레를 다섯 마리 말이 끌었기에 생긴 말입니다. 삼척 하면 떠오르는 정자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 하나인 죽서루(竹西樓)입니다. 당시 삼척부사(三陟府使)의 집무실이 있던 동헌은 죽서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남편 조원이 버들잎이 피어나는 봄날 죽서루에서 연회를 열었나 봅니다. 풍악이 그치니 잔치가 끝나는 거겠죠. 옥봉은 얼른 거울 앞으로 가 눈화장을 합니다.
오십천에서 바라본 죽서루(竹西樓). 옛 삼척부(三陟府) 관아 옆에 있는데, 관동팔경의 하나로 경관이 수려하다.(사진 – 국가문화유산포탈)
남편 조원은 당쟁을 막아보려고 애썼던 이입니다. 그러나 당쟁을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번거로운 한양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경상도 성주목사(星州牧使)로 부임합니다. 이때도 옥봉은 당연히 따라갑니다. 부임해갈 때인지 올 때인지 모르지만 일행은 지금의 구미 낙동강변 보천탄(寶泉灘)이라는 곳을 지납니다. 이때의 감흥을 느껴 옥봉은 즉흥시를 짓습니다.
寶泉灘卽事(보천탄즉사)
桃花良浪幾尺許(도화양랑기척허)
銀石沒項不知處(은석몰정부지처)
兩兩鸕鶿失舊磯(양량노자실구기)
銜魚飛入菰蒲去(함어비입고포거)
보천탄에서
복사꽃 같은 물결 몇 척이나 솟구치나
바윗돌들 파묻혀서 어딨는지 모르겠네
짝지어 나는 물새 옛 앉던 곳 못 찾고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부들 풀숲 내려앉네
이옥봉 제단 위에 있는 조원(趙瑗)의 묘. 조원은 유명한 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제자로 시와 문장에도 능숙한 문사(文士)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듯 행복했던 시절도 갑자기 막을 내립니다. 조원(趙瑗)의 현손(玄孫) 조정만(趙正萬, 1656년(효종 7)~1739년(영조 15))은 자신의 문집 『오재집(寤齋集)』에 「이옥봉행적(李玉峰行蹟)」이라는 옥봉의 행장(行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사람의 평생의 행적을 기록한 글)을 남겼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옥봉이 평소 잘 알고 있던 여인의 남편은 소백정이었는데, 소도둑으로 몰려 구속되었답니다. 그 여인은 옥봉을 통해서 조원으로 하여금 남편을 구원하는 소장(訴狀)을 써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옥봉은 조원에게 감히 부탁하기 어려워 손수 소장을 써 줍니다. 그리고 소장 말미에 아래와 같이 「견우(牽牛)」 시(詩)를 덧붙입니다.
牽牛(견우)
洗面盆爲鏡(세면분위경)
梳頭水作油(소두수작유)
妾身非織女(첩신비직녀)
郎豈是牽牛(낭기시견우)
견우
세숫대야로 거울을 삼고
얼레빗에 물을 묻혀 기름 대신 씁니다
첩의 몸이 직녀가 아닐진대
낭군이 어찌 견우가 되오리까
옥봉이 써 준 문서로 여인의 남편은 석방됩니다. 옥봉은 소장에 소백정의 무죄를 조리 있게 썼겠지만, 시(詩)를 통해 소도둑의 부인이 거울도 없고, 머리 기름도 없어 물 묻은 얼레빗으로 머리를 단장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겠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이 시(詩)를 본 사건을 담당했던 관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누가 써주었는지 물었습니다. 소백정의 아내는 당황해서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그 관리가 「견우(牽牛)」 시(詩)를 들고 조원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옥봉이 이러한 기이한 재주가 있는 대단한 사람임을 미처 몰랐다고 말합니다. 관리가 간 다음 조원은 옥봉을 불러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소백정의 아내를 위해 시를 지어 주어 나라의 옥에 가두었던 죄수를 놓아주게 하고 남들의 이목을 번거롭게 하였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옥봉을 부르지 않습니다.
옥봉의 행장을 쓴 조정만도 자신의 고조(高祖) 할아버지 조원의 처사가 공정하다고 여기진 않은 듯합니다. 행장의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세상에서 혹 대군자의 포용하는 도리로는 그대로 두어도 괜찮지 않은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 또한 그럴 듯하다. 받들어 생각하건대 우리 선조의 너그러운 성품으로는 꼭 이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나, 그(옥봉의) 재주가 지나친 것을 경계해서 그렇게 한 것 아니겠는가.(世之論者或言大君子包容之道。不害爲容置。是亦然也。仰惟吾先祖之寬厚。不必有是。而無乃惡其才勝而然耶)
화려한 꽃도 때론 이름 없이 지기도 합니다. 무언가에 앞서 나가는 이들은 늘 이렇게 쓸쓸함과 함께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조원에게서 내침을 받은 옥봉은 따로 살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늘 조원을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정조를 지키다 죽었다고 합니다. 조원에게 버림받고도 조원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흠뻑 묻어있는 옥봉의 시(詩) 한 수를 보겠습니다.
夢魂(몽혼)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꿈결에서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사창에 달빛 드니 슬픔이 많답니다
꿈결에 오고간 것도 흔적이 있다면
그대 문 앞 돌길은 모래가 되었겠죠
얼마나 사랑하면, 얼마나 그리워하면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저는 옥봉(玉峯)의 일생을 알고 이 시를 보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옥봉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갈고 닦아 하늘의 별처럼 우뚝한 대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분제의 한계와 여성을 속박하는 성리학 이념의 굴레를 넘어서지 못하고 끝내 쓸쓸하게 스러져갔습니다. 옥봉에게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 「저 평등의 땅에」를 바치면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치려고 합니다. 노래의 ‘노동자’를 ‘여성들’로 바꾸면 옥봉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요. 아울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 중심의 사회적, 제도적 굴레를 없애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에게도 이 노래를 바칩니다.
저 평등의 땅에
- 류형수
저 하늘 아래
미움을 받은 별처럼
저 바다 깊이
비늘 잃은 물고기처럼
큰 상처 입어 더욱 하얀살로
갓 피어나는 내일을 위해
그 낡고 낡은 허물을 벗고
잠 깨어나는 그 꿈을 위해
우리 노동자의
긍지와 눈물을 모아
저 넓디 넓은
평등의 땅위에 뿌리리
우리의 긍지 우리의 눈물
평등의 땅에 맘껏 뿌리리
[참고] 위 시(詩) 중 「즉사(卽事)」와 「보천탄즉사(寶泉灘卽事)」는 고전번역원 정선용 선생이 번역한 것이어서 제목을 제외하고 그대로 옮겼음을 밝힙니다.
2020년 9월 9일
최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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