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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동(鄭壽銅)의 시 「作詩有感(작시유감)」에 붙여
강가에서
- 남덕현
물결 하나
강 건너 오는 것을
물새 하나
강 건너 가는 것을
바람 하나
강물에 스쳐 젖는 것을
무엇 하나 끝까지
바라보지 못하고
나는 졸다만
돌아간다
(남덕현 시집 『유랑』 노마드시선, 2016)
나는 오래 전부터 정수동(鄭壽銅, 1808년(순조 8)~1858년(철종 9))의 시(詩)로 한시산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정수동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시인이자 재담꾼이었습니다. 대 천재였지만 중인(中人)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끝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습니다. 현실 한계에 좌절한 그는 폭음(暴飮)을 일삼았습니다. 그 사이 때로는 시(詩)로 울분을 풀고, 때로 재담(才談)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정수동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문득 남덕현 시인의 시 「강가에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결 하나 강 건너오는 것, 물새 하나 강 건너가는 것, 바람 하나 강물에 스쳐 젖는 것을 알아차리고 볼 수 있는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끝까지 바라보지 못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세상의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면 얼마나 슬픈 일이었을까요.
정수동의 시를 보기 전에 그를 매우 아꼈던 남공철(南公轍, 1760년(영조 36)~1840년(헌종 6))이 정수동에게 준 시를 먼저 보겠습니다.
贈鄭壽銅芝潤(증정수동지윤)
有情天下王長史(유정천하왕장사)
落魄江南杜牧之(낙백강남두목지)
爾汝定交皆杵臼(이여정교개저구)
文章餘事卽胡荽(문장여사즉호수)
才高難入時人眼(재고난입시인안)
動輒得謗名亦隨(정첩득방명역수)
정수동 지윤에게 주다
천하의 왕장사처럼 살가움이 많았고
강남의 두목지처럼 실의해도 호탕했네
한번 사귀면 둘도 없는 벗이 되고
심심풀이 지은 문장도 향기가 난다네
재주가 높아도 남의 눈에 들기 어려워
때때로 비방 들었지만 명성 또한 높았네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다음에 세워진 진(晉)나라의 역사서인 『진서(晉書)』에 따르면 왕장사(王長史)의 이름은 왕몽(王濛)이라고 합니다. 벼슬이 사도장사(司徒長史)로 마쳤기에 왕장사로 불립니다. 얼굴이 대단히 아름답게 생겼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모자(帽子)가 해져서 시장으로 모자를 사러 갔더니, 상점의 주인이 그의 얼굴 잘 생긴 것을 좋아하여 새 모자를 그냥 주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풍류로 이름을 떨쳤고, 예서(隸書)를 잘 썼다고 합니다.
두목지(杜牧之)는 중국 당(唐)나라 시절 대 시인 두목(杜牧, 803년~852년)을 일컫습니다. 두목의 자(字)가 목지(牧之)이기에 흔히 두목지라고 부릅니다. 두목은 시도 잘 썼지만 아주 잘 생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풍류남아였고요. 두목이 처음 중국 강남 양주(揚州)에서 벼슬할 때 ‘취과양주귤만거(醉過楊州橘滿車)’라는 일화를 남깁니다. 당시 미남으로 유명했던 두목이 술에 취해 양주 거리를 지날 때면 그를 연모하던 기생들이 잘 보이려고 귤을 던졌는데, 그렇게 던져진 귤이 수레를 가득 채웠다고 해서 생긴 말입니다.
남공철이 정수동을 왕장사나 두목지에 견준 것으로 볼 때 정수동 또한 시를 잘 썼을 뿐만 아니라 인물도 매우 잘 생겼던 듯합니다. 참고로 남공철은 대제학(大提學)과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사람입니다. 학문권력과 정치권력을 모두 누렸던 분입니다. 이 시를 보면 그가 정수동을 얼마나 아꼈는지, 그리고 그의 처지를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느껴집니다. 남공철은 이 시를 정수동에게 보내면서 ‘정수동이 정월부터 4월까지 하루도 술 깨어 있는 날이 없었다(壽銅自正月至四月(수동자정월지사월) 無一日醒(무일일성))이라는 부제를 붙입니다.
이제 정수동의 시를 한편 볼까요.
無題(무제)
疎狂見矣謹嚴休(소광견의근엄휴)
只合藏名死酒褸(지합장면사주루)
兒生便哭君知不(아생편곡군지부)
一落人間萬種愁(일락인간만종수)
무제
거친 성품이라 근엄할 게 뭐 있나
이름 감추고 술 마시다 죽으면 그만
아이 태어날 때 왜 우는지 아는가
세상 근심 끝도 없어 그러는 게지
(『하원시초』 이상원 역, 열화당)
정수동과 동시대에 살았던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조두순(趙斗淳, 1796년(정조 20)~1870년(고종 7)) 또한 정수동을 매우 아끼고 후원했습니다. 그는 정수동을 기리기 위해 「정수동전(鄭壽銅傳)」이라는 짧은 전기를 지었습니다. 이 전기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수동은 제 마음대로 행동하여 평생을 남에게 구속받기를 달가워하지 않아서 스스로 세상의 규범 밖에서 노닐었으나, 믿음이 있고 겸손하여 마치 말을 못하는 듯이 하고 또 자신이 가진 걸로 남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옥황상제나 비전원(卑田院, 빈민구제 기관)의 거지 아이도 가히 위아래로 차별이 없이 짝이 될 만 하였다.’
‘총명하기가 문자에 이르러서는 무릇 궁벽하고 기괴하여 깊고 오묘하며 복잡하고 번거로워 알아볼 수 없는 것이라도 한번 보기만 하면 벌써 그 요체와 긴요한 곳을 깨달았다. 시를 가장 잘 하였는데 귀와 눈으로 보고 들은 바로써 고금의 고상하고 오묘하며 정확하여 마음에 맞는 시구를 모두 다 모아서 다듬고 정련하여 내어 놓았다. 술을 잘 마셨는데, 그것을 천성처럼 여기더니 슬픔과 기쁨, 얻음과 잃음, 눈물과 웃음, 자부와 실의, 고난 일체를 술에 기대어 시로써 표현하였다.’(『하원시초』 이상원 역, 열화당)
참으로 정수동의 성품과 재능에 대한 찬사와 그의 실의에 대한 안타까움이 물씬 풍겨 나오는 전기입니다.
정수동의 본명은 정지윤(鄭芝潤)입니다. 날 때 손바닥에 목숨 ‘수(壽)’ 자 손금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중에 향기로운 풀이름 ‘지(芝)’ 자가 있는데, 중국 한(漢)나라 역사서인 『한서(漢書)』에 ‘지생동지(芝生銅池, 지초는 구리 연못에서 자란다)’라는 구절이 있어 구리 ‘동(銅)’ 자를 취해 ‘수동(壽銅)’을 호(號)로 삼았다고 합니다.
정수동은 시를 쓰는 것에 분명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성령론(性靈論)’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체의 기교를 배격하고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시 철학이 담긴 시 한 수를 보겠습니다.
作詩有感(작시유감)
最玲瓏處性靈存(최영롱처성령존)
不下深功不易言(불하심공불이언)
入妙應經探虎穴(입묘응경탐호혈)
出奇何減鑿龍門(출기하감찬용문)
金塘融日花無質(금당융일화무질)
玉殿淸宵月有魂(옥전청소월유혼)
幽徑只堪時獨𨓏(유경지감시독의)
勸君莫寄大家藩(권군막기대가번)
시 짓는 데 느낌이 있어
가장 영롱한 곳에 성령이 있는데
심절히 공을 쌓지 않으면 말하기 어렵네
묘경에 들려면 호랑이 굴 더듬어야 하고
기묘함은 용문산 뚫음만 어찌 못하랴
금당의 햇살에 꽃은 실체가 없고
옥궁의 맑은 밤 달에도 혼이 서렸네
호젓한 길일망정 때로 홀로 가느니
그대여 대가의 울타리에는 기대질 마오
(『하원시초』 이상원 역, 열화당)
노자(老子)에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큰 기교는 서투르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수련(首聯, 제1구절과 제2구절)은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어린이의 마음과 같이 표현되는 게, 어찌 보면 서투르게 보일지라도 가장 많은 공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죠. 함련(頷聯, 제3구절과 제4구절)과 경련(頸聯, 제5구절과 제6구절)에서는 자신의 치열한 작품세계를 말합니다. 미련(尾聯, 제7구절과 제8구절)에서는 비록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시를 지을 뿐 대가의 시를 흉내 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정수동은 시(詩)만 잘한 게 아닙니다. 날카로운 풍자와 절로 웃음이 나오는 해학(諧謔)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일화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조두순(趙斗淳) 대감이 여러 대감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질 때 얘기입니다.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고 묻자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라는 사람, 무엇보다도 무소불위 권세를 부리는 ‘양반’이라는 사람 등 등 분분했습니다. 얘기를 듣던 정수동이 한마디 거둡니다. “내가 봤을 땐 말이요, 호랑이 등에 탄 양반이 제일 무섭다오.” 어느 대감집 잔치에 초대되어 갔는데, 아이 하나가 엽전을 삼켜서 아이가 죽을까봐 애 엄마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정수동이 이를 보고 “어떤 대감은 남의 돈 7만 냥을 꿀꺽 삼키고도 배만 문지르면 아무 탈 안 났는데, 제돈 한 냥 먹은 게 뭔 탈이 나겠는가. 애 배나 슬슬 문질러 주게나.” 큰소리로 말하였답니다. 한번은 정수동이 나귀를 타고 친구 집에 이르러 여러 손님들과 술을 마셨는데, 안주가 변변찮았답니다. 이에 여러 손님들에게 “내 나귀를 잡아 안주로 삼겠소.”라고 하니, 옆의 손님이 “그대가 돌아갈 때 무엇을 타고 가시려는가?”라고 하자, “주인의 닭이 있지 않은가.”라고 하였답니다. 주인이 듣고 크게 웃으며 이에 닭을 잡아 다시 술을 마련하였다고 합니다. 정수동과 관련된 일화는 무수히 많지만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정수동은 마흔살이 되던 1847년(헌종 13) 평안도와 황해도를 두루 유람합니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한양에서는 정수동이 중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정수동이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고, 스님들과도 많은 교류를 하였으니 그런 소문이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벗이었던 이상적(李尙迪, 1804년(순조 4)~1865년(고종 2))은 「문정수동입향산위승(聞鄭壽銅入香山爲僧, 정수동이 묘향산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라는 시를 지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지은 시 한 수를 보겠습니다.
大演慮吾歸橐(대연려오귀탁) 自費香積(자비향적)
痴痴萬木雪崔嵬(치치만목설최외)
鶴背神光路不開(학배신광로불개)
聞說如來曾乞食(문세여래증걸식)
我今乞食向如來(아금걸식향여래)
대연이 내 돌아갈 바랑을 근심하기에 스스로 먹을거리를 채비하며
많은 나무들 미친 듯 눈에 파묻혀
학배암 신광암 가는 길 막혀 있네
여래의 설 들으며 아직도 걸식하는지
나도 지금 걸식하며 여래를 향하네
(『하원시초』 이상원 역, 열화당)
조선 말기의 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택영(金澤榮, 1850년(철종 1)~1927년) 선생도 정수동의 전기 「정지윤전(鄭芝潤傳)을 지었습니다. 선생은 전기 말미에
‘우리 조선의 통역관 가운데 시로 알려진 자로는 홍세태(洪世泰)‧이언진(李彥瑱)‧이상적(李尙迪) 및 정수동 네 사람이 있는데, 정수동이 가장 굳세다. 조선의 정치는 조씨(曹氏) 위(魏)나라 구품중정법(九品中正法)의 남은 폐단을 답습하여 족류(族類)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심하다. 통역관은 사대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재주 있는 이들은 매번 뜻을 잃어 스스로 포기하고 원대한 학문을 구하지 않고 오직 시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펼칠 뿐이었으니, 정수동 같은 사람은 어찌 더욱 애석하지 않은가.’
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신분으로 구분하여 사람의 뜻을 펼치는 꿈을 제한한다는 건 참으로 비극입니다. 정수동은 쉰 한 살이 되던 1858년(철종 9) 2월 술에 만취하여 안동 김씨 세도가이자 영의정인 김흥근(金興根, 1796년(정조 20)~1870년(고종 7))의 사랑방에서 자다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시대의 한계에 부딪쳐 절규하듯 술을 마시고 시를 짓던 정수동은 이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벗들이 불광동 산언덕 선영에 장사지냈지만, 지금은 그의 묘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시 신분제 사회로 회귀하는 것 같습니다. 권력과 투기로 서민과 미래세대의 부(富)를 약탈하고 있습니다. 서민과 서민의 자식들에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도록 막는 천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낙담하면 안 됩니다. 낙담이야말로 서민들의 적(敵)이요, 약탈자들의 무기입니다. 없는 자들은 늘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문태준 시인의 시 「새가 다시 울기 시작할 때」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응원합니다.
새가 다시 울기 시작할 때
- 문태준
날이 화창해지고
삼나무 숲에서 새가 다시 운다
내가 무거운 물이라면
이것은 물비늘 같은 음(音)
내가 옹색한 구렁이라면
이것은 빛의 쾌적한 시야(視野)
새는 타고난 목소리로
고유한 화법으로 말을 한다
나는 말뜻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감정을 짐작할 수는 있다
새는 말끝을 높게 올리거나
옆으로 늘이며 말을 한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새가 다시 울기 시작할 때
국지성 호우를 만난 여름도
그늘의 풀도
나도
생화(生花)를 받아든 연인의 두 손처럼
낙담을 잊는다
(문태준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2018)
2021년 10월 12일
풀소리 최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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