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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형(李仁亨) 선생의 시(詩) 「설리청송(雪裏靑松)」에 붙여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참 오래 보게 되는 시입니다. 오래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가능하다면 긴 여백을 남기고 다음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말 가능하다면...

 

강물의 마음이 그런 거였군요. 세찬 강물의 소리가 그런 몸부림이었군요. 얼음으로 제 몸을 덮는 것이 그런 마음에서였군요. 어차피 녹을 눈이라고요? 그래서 부질없다고요? 세상 부질없더라도 아픈 것은 아픈 것입니다. 마음이 아프기에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파하는 마음이 있기에, 아파하는 마음이 쌓이기에, 이 아귀 같은 세상이 조금은 정화되는 것 아닐까요.

 

 

눈 덮인 1월 창경궁 춘당지입니다. 얼음이 눈을 곱게 이고 있습니다.

 

역사를 보면 도드라져 보이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마치 우뚝한 바위산처럼 늘 흔들림이 없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았을까요? 온갖 유혹이 없었을까요? 우뚝한 바위산이 될 때까지 털어낸 무수한 흙이 있겠지요. 비록 그 과정을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서 지난했던 그들의 삶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이인형(李仁亨, 1436(세종 18)~1497(연산군3)) 선생 같은 분 또한 우뚝선 바위산 같은 그런 분입니다. 그분의 시()를 먼저 보겠습니다.

 

 

雪裏靑松(설리청송)

 

雪裏靑松雨後山(설리청산우후산)

看時容易畵時難(간시용이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조지불입시인안)

多買臙脂畫牧丹(다매연지화목단)

 

눈 덮인 푸른 소나무

 

눈 덮인 소나무와 비 온 뒤의 산은

보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려워라

세인들 안중에 없음을 진작 알았다면

연지 가득 사다 모란이나 그릴 걸

 

 

공자(孔子)님이 제자들과 나눈 어록집인 논어(論語)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자왈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 공자님이 말씀하시길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 그렇습니다. 여름날 모든 초목이 무성할 때는 몰랐지만,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면 소나무와 잣나무만 남아 푸르름을 간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자님의 위의 말씀은 겨울 소나무와 잣나무는 어려움이 닥쳐도 변심하지 않고 지조를 지키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과 비견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의 세한도(歲寒圖)논어의 이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시를 살펴볼까요.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당연히 지조 있는 선비를 뜻하는 것입니다. 비온 뒤 맑게 갠 산야는 세속 욕심을 씻어낸 고고한 선비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지조 있는 선비, 고고한 선비의 삶이 어디 녹록한가요. 세상 사람들은 일찌감치 그런 삶을 포기하고 부귀(富貴)와 영달(榮達)을 좆는 삶을 삽니다. 그게 어쩜 사람들의 당연한 삶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다 나는 끝없이 지조 있고, 고고한 삶을 살려고만 했을까요. 차라리 세상 사람들처럼 쉽게 부귀영달을 추구할 것을요. 참고로 모란은 부귀함의 상징입니다.

 

언뜻 보면 후회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인형 선생의 삶을 보면 후회가 아니라 다짐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조선 성리학, 그중에서도 도학(道學)의 으뜸 스승이라는 김종직(金宗直, 1431(세종 13)~1492(성종 23)) 선생의 제자입니다. 김종직 선생은 딸을 이인형 선생 큰아들에게 시집보내 사돈으로 삼을 만큼 아끼던 제자입니다. 이인형 선생은 스승인 김종직 선생의 뜻을 좆아 평생 선비의 길을 간 분입니다. 그리고 끝내 연산군(燕山君)의 폭정이 정점에 달했던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甲子士禍) 논구유생사(論救儒生事, 선비들을 구하자는 논의)의 수창자(首倡者, 앞서 주장한 사람)로 지목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 시체를 무덤에서 파내서 목을 자르는 벌)당하였습니다.

 

 

광주호에서 바라본 눈 덮인 무등산입니다. 저 눈은 겨울이 깊어지면서 언 호수 위까지 덮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희망까지 덮을 수는 없습니다.(담양 고서에 사는 후배 조복 군이 보내준 사진입니다.)

 

이인형 선생의 생애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15, 16세에 이미 문장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었습니다. 1455(세조 1)20세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젊은 나이에 출사하는 것은 교만한 성품을 기른다고 하면서 집에서 문을 닫고 독서하였습니다. 33세 되던 1468(세조 14) 마침내 과거를 보았고, 장원급제하였습니다. 나중에 지금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을 합쳐놓은 벼슬에 해당하는 대사헌(大司憲)까지 역임했습니다. 중종(中宗) 임금 때 어득강(魚得江, 1470(성종 1)~1550(명종 5))이 상소하여 청백리(淸白吏)로 강력 추천할 정도로 지방 수령으로 있을 때 사리사욕을 멀리하고 백성들을 위해 헌신했던 분입니다.

 

참고로 이 시는 사목단(寫牧丹, 모란을 그리다)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자는 김종직 선생의 시라고 하고, 혹자는 이인형 선생과 동문수학한 김굉필(金宏弼) 선생의 시라 하기도 합니다. 물론 몇 글자를 바꿔서 말이죠. 그러나 눌암(訥庵박지서(朴旨瑞, 1754(영조 30)~1819(순조 19)) 선생이 지은 대사헌 매헌 이선생 묘비명(大司憲梅軒李先生墓碑銘)에 보면 이 시를 이인영 선생의 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묘비명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것을 함부로 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인영 선생의 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서 선생은 벼슬은 안 했지만 진주지역의 대학자입니다. 당시 학자들은 그를 강우유종(江右儒宗, 낙동강 서쪽 영남의 으뜸 선비)’ 또는 ‘남주제일인(南州第一人)’이라고까지 불렀답니다선생은 사후 진주 9현을 모신 정강서원(鼎岡書院)에 배향됐습니다

 

봄을 알리는 제주 수선화 '금잔옥대'입니다. 제주도 서귀포에는 12월 초에 벌써 피었습니다. 그만큼 봄은 이미 와 있기도 하다는 뜻이겠지요.

 

겨울이 깊어지면 봄이 가까이 온 것이기도 합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지만, 삶에서 만나는 겨울은 언제 따뜻한 봄으로 바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자연의 변화처럼 우리네 삶도 봄날이 올 거라는 낙관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봄을 간절히 기다리고, 봄의 기미를 반가워하는 한시 한편을 보겠습니다. 유방선(柳方善, 1388(우왕 14)~1443(세종 25)) 선생의 시입니다.

 

 

雪後(설후)

 

臘雪孤村積未消(납설고촌적미소)

柴門誰肯爲相敲(시문수긍위상고)

夜來忽有淸香動(야래홀유청향동)

知放寒梅第幾梢(지방한매제기초)

 

눈 온 뒤

 

외딴 마을 섣달 쌓인 눈 녹기 전이라

너나없이 사립문 두드리기 어렵구나

밤이 되자 맑은 향기 홀연히 스쳐오니

가지 끝 겨울매화 막 피어나나 보다

 

 

유방선 선생은 조선 초의 대학자입니다. 1409(태종 9) 아버지 유기(柳沂)가 민무구(閔無咎, ?~1410(태종 10))의 옥사에 관련된 것으로 연좌되어 사형 당했습니다. 선생도 옥사에 연루되어 청주, 영천 등지로 유배되어 18년이 지난 1427(세종 9)에야 풀려났습니다. 선생은 정몽주(鄭夢周, 1337(충숙왕 복위 6)~1392(공양왕 4)) 선생의 제자인 변계량(卞季良권근(權近) 등을 스승으로 섬겨 공부했습니다. 아버지가 사형당하고, 멸문에 가까운 탄압을 받았음에도 학문에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마치 위의 시에서처럼 가지 끝에서 막 피어날 한 송이의 겨울매화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면서 대학자인 서거정(徐居正, 1420(세종 2)~1488(성종 19)) 선생이나 단종(端宗) 복위운동을 하다 사형당한 이보흠(李甫欽, ?~1457(세조 3)) 선생 등 걸출한 학자들을 길러냅니다.

 

 

제주도 협재해수욕장의 낙조입니다.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옵니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곧 오겠죠.

 

선생은 평생 벼슬을 사양하고 처사(處士), 은자(隱者)의 삶을 살았습니다. 선생에게 봄날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겨울매화는 무엇이었을까요. 욕망을 거르지 않고 마구마구 쏟아내는 아귀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갈구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봄을 알리는 겨울매화는 무엇일까요. 그래도 이 아귀 같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건 희망입니다. 그들에게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김용택 시인의 시 산을 기다린다를 바치며 한시산책을 마칩니다.

 

 

산을 기다린다

- 도현에게

 

산외 지나면 산내다

산외에서 산내 가는 길

몇 개의 인적 드문 옛 마을에

살구꽃이 지고

먼산에 산벚꽃 지더니

지금은 감잎이 핀다

 

뭐 하니?

우리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 밤 나도 마당에 내려서서

호주머니에 두 손 찌르고 서성인다

텃밭의 마늘같이 고르지 못한 이 하루의 생각들을

무슨 말로 정리하랴

어두워도 보이는 얼굴이 있을까

어둔 산 쪽을 바라본다

기다리는 것들은 오지 않음을 알면서

나는 날마다 산을 기다린다

 

산외 지나

산내다

산내에서 너 있는 곳이 산외다

 

산 밖에서

그리운

본다

서쪽이다.

(김용택 시집 『연애시집』 마음산책, 2002)

 

 

2021년 12월 13일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