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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대사(霜月大師)의 시 「파근용추춘영(波根龍湫春詠)」에 붙여

 

 

편히 잠들려면 몸을 바꿔야만 해

(구름에게 배운 것)

- 김선우

 

구름이면서 구름들이지

지금의 몸을 고집하지 않지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스미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지

 

두려움 없이 흩어지며

무너지고 사라지는 게 즐거운 놀이라는 듯

다시 나타날 땐 갓 태어난 듯 기뻐하지

그게 다지

곧 변할 테니까

 

편히 잠들기 위해 몸을 이동시키는 법을

나는 구름에게서 배웠네

모든 것이 지나간다는 것도

 

그러니 즐거이 변해가는 것

내가 가진 의지는

그게 다지

(김선우 시집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1.)

 

 

잠은 편이 자나요? 혹시 잠을 깊이 못 자는 분이 있다면 김선우의 이 시가 더 눈에 뛰겠죠? 김선우 시인처럼 편히 잠들기 위해 구름에게 배워볼까요. 구름은 두려움 없이 흩어지고, 다시 나타날 땐 갓 태어난 듯 기뻐하지요.

 

우리의 삶은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가 번갈아 달리는 시간의 궤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궤적을 지나면서 온갖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죠. 그러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하다는 시간의 저주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름은 어때요. 무심히도 흩어지기도 하고 뭉쳐지기도 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구름과 같은데, 우리만 시간의 고통과 저주에 갇혀 사는 건 아닐까요.

 

 

2018년 7월 죽방렴으로 유명한 남해 지족항에서 본 바다와 하늘. 구름은 변화무쌍하게 합쳐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생겨나기도 한다.

 

저는 불교에 과문합니다. 그러나 그간 읽은 서적에 근거할 때 불교는 인간을 김선우 시에 나오는 구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고 설파하는 것 같습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본성이니 변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요. 그렇게 깊이는 아니더라도 구름처럼 변화에 순응한다면 잠은 좀 더 잘 들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한시의 주인공은 조선 후기의 고승(高僧) 상월대사(霜月大師, 1687(숙종 13)~1767(영조 43))입니다. 대사의 시 한 수를 보겠습니다.

 

 

松風鳴夜絃(송풍명야현)

 

澗瑟誰彈曲(윤슬수탄곡)

松琴自奏絃(송금자주현)

鍾期何處在(종기하처재)

惟有月當天(유유월당천)

 

솔바람이 밤에 거문고를 울리네

 

여울비파는 누가 줄을 타는가

솔거문고는 스스로 연주하는데

종자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늘에는 오직 달만 떠 있네

 

 

여울의 물 흐르는 소리는 비파 소리를 닮았나 봅니다. 소나무 숲에 바람이 지날 때 나는 소리는 거문고 소리를 닮았고요. 설령 닮지 않으면 어때요. 그렇게 들리는 게 중요하지요.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표현하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감성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하늘에 달이 떠 있을 뿐입니다. 진리는 그렇다는 거죠. 알아주는 이 없어도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거죠.

 

 

상월대사의 초상 「상월당대사새봉영자(霜月堂大師璽篈影子)」이다. 상월대사가 54세 되던 1742년(영조 18)에 그린 것으로 지금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이 소장하고 있다. (사진 : LACMA)

 

공자님도 이 시와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공자님이 뜻을 펼치려 수레를 타고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하였지만, 알아주는 군주가 없었습니다. 실의에 빠져 숲길을 가다가 사람이 거의 안 오는 곳에 짙은 향내를 풍기며 고고하게 피어나는 난초꽃을 보았습니다. 그 난초꽃을 보고 공자님은 난초는 깊은 숲속에서 나서도 사람이 없다고 향내를 감추지 않는구나. 군자는 도를 닦고 덕을 세움에, 곤궁하다고 절개를 바꾸지 않아야겠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참고로 종자기(鍾子期)는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거문고를 잘 타는 백아(伯牙)의 벗이었습니다. 종자기는 백아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습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진 것을 한탄하여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리고 연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아의 음악을 알아주는 벗, 마음을 알아주는 벗을 지음(知音)’이라고 합니다.

 

 

贈龍潭慥冠大師(증용담조관대사)

 

衆人鳴法皷(중인명법고)

何後又何先(하후우하선)

獨臥深庵裡(독와심암리)

閑吟草色鮮(한음초색선)

 

용담 조관 대사에게 주다

 

뭇 사람들 법고 울리니

누가 뒤고 누가 앞인가

홀로 깊은 암자에 누워

한가로이 고운 풀빛 읖조리네

 

 

조관대사는 상월대사의 의발(衣鉢)을 물려받은 용담 조관(龍潭慥冠, 1700(숙종 26)~1762(영조 38))입니다. 말하자면 수제자입니다. 상월대사는 제자에게 진리를 전하는데 스승과 제자가 따로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미 진리를 얻은 제자가 있으니 마음은 한없이 한가롭기만 합니다. 제자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찬사인 것 같습니다. ‘의발가사(袈裟)와 바리때를 말하는 것으로 스승이 제자에게 전해 주는 불교의 교법(敎法)이나 오의(奧義)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또 다른 제자 징오(憕窹) 대사는 스승 상월대사를 이렇게 평합니다.

 

“초학자라고 해서 정미한 강론을 빠뜨리지 않았고, 재주 높은 자라고 해서 계율의 강독을 생략하지 않았다.(不以初學而闕精微之論。不以高才而略戒律之講)” “더욱이 주석하는 말에 구속됨을 근심하여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문자를 떠나 뜻을 취하고 근본을 꿰뚫어 보게 하였다.(尤以註說之桎梏爲憂。必使學者。離文取意。洞見本源)”

 

 

波根龍湫春詠(파근용추춘영)

 

澗合無絃瑟(간합무현슬)

山明不畫屏(산명불화병)

有懷千古事(유회천고사)

獨立小沙汀(독립소사정)

 

파근사 용추에서 봄에 읊다

 

흘러드는 시냇물은 줄 없는 거문고요

밝은 산은 그리지 않은 병풍이라

아득히 먼 천고의 일을 회고하면서

홀로 작은 모래 물가에 섰노라

 

 

파근사는 남원 쪽 지리산 자락에 있던 큰 절이었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제자인 조관대사와 손자 제자인 윤장대사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상월대사는 아마도 어느 봄날 제자인 조관대사가 머물던 파근사에 들른 것 같습니다. 수제자의 상징인 의발(衣鉢)을 넘겨준 제자를 만나고 하산하다 용추폭포에서 이 시를 지은 게 아닌가 합니다.

 

 

상월대사의 초상 「상월당대사새봉영자(霜月堂大師璽篈影子)」의 얼굴 부분. 제자인 징오(憕窹) 대사는 상월대사를 /선사는 신장이 보통 사람을 겨우 넘을 정도였지만 몸이 풍성하고 체구가 후덕하였다. 둥근 얼굴에 귀가 컸으며, 살결은 희고 윤기가 있었다. 음성은 큰 종을 울리는 듯했고, 앉음새는 흙으로 빚은 불상 같았다/고 회고했다. (사진 : LACMA)

 

상월대사는 동방 선()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 임제선사(臨濟禪師, ?~867)31세 손()제자입니다. 가까이는 청허(淸虛) 대사(서산대사)5대 적전(嫡傳)입니다. 청허 후 편양(鞭羊) - 풍담(楓潭) - 월저(月渚) - 설암(雪巖)으로 의발(衣鉢)을 이어받았는데, 상월대사는 설암대사에게서 의발을 받았습니다. 이제 제자인 조관대사에게 의발을 전수하였으니 많은 회한이 일었을 겁니다. 아득한 시절 진리가 있어 임제선사로부터 이어오는 법맥(法脈)이 끊어지지 않고 제자 조관대사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니 천고의 일을 다시 회고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요.

 

 

留題金波室(유제금파실)

 

來時不見去時同(내시불견거시동)

事旣相違意未通(시기상위의미통)

巖下泉聲愁裡冷(암하천성수리랭)

樹頭雲影望中籠(수두음영망종롱)

樵歌唱晩歸深壑(초가창만귀심학)

鴈陣驚寒落遠空(안진경한락원공)

此後心談何處是(차후심담하처시)

但看西嶺夕陽紅(단간서령석양홍)

 

금파 조실에 시를 써서 남기다

 

올 때도 못 보고 갈 때도 보지 못해

일이 서로 어긋나서 마음도 못 나눴네

바위 밑 샘물 소리 시름 속에 싸늘해지고

나무 끝 구름 그림자 보는 중에 덮쳐오네

저물녘 나무꾼 노래 깊은 골짜기서 돌아오고

추위에 놀란 기러기 떼 먼 하늘로 사라지네

이후로 마음속 얘기 어디 가서 할 건가

서쪽 고갯마루 붉은 저녁 해만 바라보네

 

 

금파대사에 대하여 제게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누구인지 밝힐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마음이 통하는 도반(道伴) 중 한 사람이었겠지요. 금파대사를 만나러 갔다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는 아쉬움이 절절히 묻어나는 시입니다.

 

 

조선 정조 임금 때 크게 활약한 명재상 채제공(蔡濟恭) 선생의 초상肖像) 시복본(時服本). 채재공 선생은 대흥사에 있는 상월대사비(霜月大師碑)의 비문을 썼다. 예전에, 대궐 안에 들어가 임금을 뵐 때나 공무(公務)를 볼 때에 벼슬아치들이 입던 옷을 시복(時服)이라 하였는데, 채재공 선생이 입고 있는 옷이 시복이다. 보물 1477-1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 국가문화유산포털)

 

대흥사에 가면 조선시대 명재상인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숙종 46)~1799(정조 23)) 선생이 비문을 쓴 상월대사비(霜月大師碑)가 있습니다. 번암 선생은 상월대사의 어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합니다.

 

“배우는 사람이 만약 돌이켜 보는 공부(返觀工夫, 반간공부)가 없다면 비록 하루에 천 마디를 외우더라도 심성(心性)에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만약에 자기를 전일하게 하는 공부(專己工夫, 전기공부)가 없으면 사람들이 공양하는 신심(信心)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니 이것은 옛사람들이 말했다. 내가 하루라도 마음속에 착실하게 공부하지 않았다면 바로 밥을 대하여도 부끄러워서 밥숟가락을 덜어 낸다.”

 

“그 실속이 없이 헛된 명성(虛名, 허명)만 있는 자는 가장 먼저 하늘의 벌을 받을 것이니 부처를 배우는 자들에게는 더욱 심하다. 부처의 마음은 등불과 같아서 더욱 스스로를 속일 수가 없다.” (한학자 김규정 선생 번역, 장흥신문)

 

 

謹挽無用大和尙(근만무용대화상)

 

宗門不覺法雷停(종문불각법뢰정)

一朶拈花此日零(일타염화차일령)

後代兒孫無所托(후대아손무소탁)

即今禪侶絶由聽(즉금선려절유청)

曺溪山色含新恨(조계산색함신한)

水石亭光減舊馨(수석정광감구형)

生死雖知雲起滅(생사수지운기멸)

臨風哀涙灑空庭(임풍애루쇄공정)

 

삼가 무용 대화상을 애도하다

 

어느새 종문에 진리의 천둥 멈추었고

한 송이 손에 든 연꽃 오늘 떨어졌네

후대의 자손들은 의탁할 곳 없어졌고

지금의 선승들은 들을 데가 끊어졌네

조계산의 산빛도 새로운 한 머금었고

수석정의 풍광엔 옛 향기 희미해지네

삶과 죽음이 뜬구름임을 뉘 모를까만

바람결에 슬픈 눈물 빈 뜰에 날리네

 

 

삶과 죽음을 자연의 변화로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불교의 가르침이겠지요. 그렇다면 슬픔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도 자연스러움이 아닐까요. 상월대사는 선배 고승(高僧)의 죽음에 이렇듯 아쉬움과 슬픔을 표현합니다.

 

무용대화상(無用大和尙, 1651(효종 2)~1719(숙종45))은 법명이 수연(秀演)으로 진도 쌍계사사적(雙磎寺事蹟)과 영암 도갑사수미왕사비문(道甲寺守眉王師碑文)과 전주 송광사사적비문(松廣寺事蹟碑文)을 지은 고승입니다. 말년에 수석정(水石亭)을 짓고 기거하였다고 합니다. 수석정은 지금 송광사 뒤편 수석정 삼거리 근처에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봄날 선운사의 원경. 상월대사는 이곳에서 출가하였으며, 이곳에서 입적(入寂, 스님의 죽음)하셨다. (사진 : 순천시청 홈페이지)

 

우리나라 고승들의 행적을 모아놓은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의하면 1767(영조 43) 10월에 상월대사는 몸에 가벼운 질병 증세가 있자 임종게(臨終偈)를 읊으시고 기쁜 모습으로 입적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대사는 세속 나이로 81세였고, 출가한 나이 법랍(法臘)70세였습니다. 임종게는 다음과 같습니다.

 

水流元去海(수류원거해)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물은 흘러 본래 바다로 돌아가고

달은 져도 하늘을 떠나지 않는다

 

대사가 입적하자 여러 제자들은 대사에게 평진대종사(平眞大宗師)’라 호를 올립니다. ‘()’은 실덕(實德, 진실한 덕)을 취한 것이요, ‘()’은 실행(實行, 진실한 실천)을 취한 것이랍니다. 남한에는 대흥사와 선운사에 각 상월대사의 사리탑이 있습니다.

 

문명이 활짝 꽃피울 것 같았던 21세기이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지옥 아귀 같은 삶이 우리 주변 곳곳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아귀 같은 삶이 우리를 옥죄어 오더라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연민, 연대의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니 더욱더 연민하고 더욱더 연대해야겠지요. 그런 의미를 담아 상인스님의 시 그리움으로 이번 한시산책을 마칩니다.

 

 

그리움 1

- 상인스님

 

앞산 너머

떠나는

님 쫓아

따라갔더니

 

서산 마루턱에

붉은 해 걸치고

 

뒷동산 너머에는

어느새

달 올라서네

(상인스님 시집 『별들이 뜨락 밝히는 밤』, 불교신문사, 2019.)

 

 

** 상월대사의 시 번역은 박재금 선생이 옮기고 동국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한 상월대사시집(霜月大師詩集)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2022년 7월 11일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