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해 선생의 시 「산중(山中, 산속에서)」에 붙여 마지막 사랑 - 남정림 사랑한다는 말은 아껴두세요 모든 화려함이 떠난 쓸쓸한 자리에 그대 나와 함께 머물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떠난 외로운 자리에 그대 나와 함께 꿈꿀 수 있나요? 사랑스러움마저 허물어져도 그대 안의 사랑의 빛으로 마지막 사랑을 켤 수 있나요? (남정림 시집 『사랑, 지구 너머의 계절』 모악, 2021년) 사랑이란 누군가가 사랑의 빛으로 상대를 비출 때 비로소 나타나는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치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달처럼 말입니다. 내 사랑의 빛은 얼마나 될까요. 내가 받는 사랑의 빛은 얼마나 될까요. 받는 사랑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아 그믐달처럼 내 존재가 묻힌다 해도 내 안의 사랑의 빛을 토해낼 수 있을까요. 남정림 시인의 절..
꽃무릇 소식이 여기저기서 올라오지만, 가까이 꽃무릇이 많은 서대문 안산에도 못 가보고 있었습니다. 지난 9월 19일(월) 아침 서대문구의회에 일보고 나서 바로 옆에 있는 안산 자락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꽃무릇이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지만 이게 뭔가요.. 벌써 꽃무릇은 절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안산에는 '여기에도 꽃무릇이 피어?' 라고 깜짤 놀랄 정도로 꽃무릇을 여러 군데 심어놓았습니다. 일찍 핀 꽃무릇은 벌써 지고 있지만, 그래도 새순이 또 올라오고 있으니 당분간은 꽃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서대문 안산의 꽃무릇은 예년보다 조금 일찍 피고, 또 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늦더위 때문 아닐까요. 예년 같으면 지금쯤 마구 피어나고 있을 텐데요.. 일이 바빠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안산방죽으로 내려왔습니다. 안..
석주(石洲) 권필(權韠) 선생의 시 「궁류시(宮柳詩)」에 붙여 무인도 - 김미정 어디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느냐 어둠을 밀고 가는 차가운 도시 불빛 엎드려 갈 곳을 몰라, 가도 가도 바닥뿐 그 바닥 핥고 가는 왜바람 소리더냐 머리맡 흔들고 간 엇갈린 수신호에 멀어져 가는 눈길과 돌아누운 그림자 역 광장 가로질러 때 이른 꽃샘이냐 손가락 사이사이 검푸른 풍랑 일어 출항을 꿈꾸는 저 몸결, 어둠살을 더듬어 (김미정 시집 『슬픔의 뒤편』 문학의전당, 2022) 수많은 발길이 엇갈리는 도시의 밤거리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바닥만 바라보며 걸을 뿐입니다. 휘황한 불빛이 빛나고, 수없는 차량이 몰려다녀도 나와 연결될 것이 하나도 없고, 가야할 곳도 정할 수 없다면 여기가 무인도나 무에 다르겠습니..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산업재해로 2,080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하루 평균 5.7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매우 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 이 통계는 공무원재해보상법을 적용받는 우체국 노동자와 어선재해보상보험법을 적용받는 어선 노동자의 재해 사망자가 빠져 있는 수치입니다. 우체국(택배 포함) 노동자와 어선 노동자의 재해 사망자를 합치면 훨씬 높은 수치가 나올 겁니다. (노동부 발표 자료 재가공) 년 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산재사고 사망자 964 971 855 882 828 산재질병 사망자 993 1,171 1,165 1,180 1,252 산재사망자 1,957 2,142 2,020 2,062 2,080 2021년 사고 재해..
성삼문 선생의 「자미화(紫微花)」에 붙여 구월 - 나태주 구름이라도 구월의 흰구름은 미루나무의 강언덕에 노래의 궁전을 짓는 흰구름이다 강물이라도 구월의 강물은 햇볕에 눈물 반짝여 슬픔의 길을 만드는 강물이다 바라보라 구월의 흰구름과 강물을 이미 그대는 사랑의 힘겨움과 삶의 그늘을 많이 알아버린 사람 햇볕이 엷어졌고 바람이 서늘어졌다 해서 서둘 것도 섭섭할 것도 없는 일 천천히 이마를 들어 구름의 궁전을 맞이하세나 고요히 눈을 열어 비늘의 강물을 떠나보내세. (나태주 시집 『혼자서도 별인 너에게』 서울문화사, 2020) 구월은 가을이 시작되는 달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시원해지는 철은 아니죠. 그래도 가을의 조짐은 여기저기서 나타납니다. 제가 느끼는 가장 큰 가을의 전조는 그늘이 짙어지는 겁니다. 그..
지난 2022년 7월 21일(목) 1박 2일 일정의 워크숍이 있어서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워크숍 때문에 좀 딱딱하기는 하겠지만, 수려한 춘천으로의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처음 타 본 itx청춘 열차는 청량리에서 춘천을 1시간 만에 주파했습니다. 낭만적인 예전의 덜컹거림과 차창 너머 한참을 이어 보이던 북한강 등의 추억은 되살리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춘천 가는 길은 산과 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의 연속이었습니다. 워크숍 장소는 춘천역 근처 호숫가에 있었습니다.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하였기에 일단 호수 쪽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오랜 역사적 유적이 가득한 중도. 그래서 무차별 개발에 많은 이들이 저항했던 곳. 그곳에 역사문화유적을 보존하고자 한 많은 이들의 열망을 짓밟고..
2019년 5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3일차. 우리는 루스키섬으로 갔습니다. '루스키'는 러시아인이라는 뜻일 테인데, 섬 이름으로 삼은 것은 아마도 이유가 있겠지요. 루스키섬은 블라디보스토크를 감싸고 있습니다. 오오츠크해의 거친 파도를 막는 방파제라고나 할까요. 그리고 섬과 본토 사이로 난류가 흐르는지, 블라디보스토크는 이곳의 유일한 부동항이기도 합니다. 본토에서 루스키섬으로 이어주는 다리는 루스키대교로 3.1km 거대한 현수교입니다. 러시아가 2012년 AFEC 회의를 개최할 때 루스키섬에서 본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그 회의를 위해 놓은 다리입니다. 회의장은 지금 극동연방대학교가 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보안이 심해서 대학교에 들어갈 수 도 없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바틀린곶으로 향했습니다. 찻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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