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상적 선생의 시 「기응(飢鷹, 굶주린 매)」에 붙여

 

 

눈먼 말

- 박경리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박경리 시집 『우리들의 시간』 나남, 2010)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의 시입니다. 요즘 세대는 잘 모르지만 5060세대에게 박경리 작가는 물을 필요 없는 대문호입니다. 그의 시집 우리들의 시간첫머리에 서문처럼 이 시가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기계 방앗간이 나오기 전에 마을마다 연자매라 불리는 연자방아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의 말이나 소가 연자매를 돌리면서 곡식을 도정하는 기구였죠. 연자매를 돌리는 말은 곡식이 모두 도정될 때까지 끊임없이 돌고 또 돕니다. 마치 언덕에 굴러 떨어진 돌을 끝없이 밀어 올리던 시지프스처럼요.

 

 

국가민속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된 제주 애월 말방아입니다. 말방아는 연자매를 부르는 제주도말입니다. 연자매는 곡식을 도정하는 기구입니다. 한 마리 또는 두 마리의 말이나 소가 끌면서 연자매를 돌립니다. 애월 말방아는 두 마리의 말이 끌던 연자매입니다.(사진 : 제주특별자치도청)

 

불후의 명작을 남긴 대 작가가 자신을 연자매 끄는 눈먼 말에 비유한 것을 보고 저는 잠깐 상념에 잠겼습니다. 운명이란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떤 것이겠죠. 그런 면에서 사명보다는 불변성이 큽니다. 눈먼 말 같은 운명을 살면서 박경리 선생은 스치고 부딪치고 아팠나 봅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이상적(李尙迪, 1804(순조 4)~1865(고종 2)) 선생 또한 운명의 질곡에서 고통 받았던 이입니다.

 

 

飢鷹(기응)

 

瘦骨稜稜立架頭(수골릉릉입가두)

雲霄志氣動雙眸(운소지기동쌍모)

如何不及閒鷗鷺(여하불급한구로)

飮啄江湖得自由(음탁강호득자유)

 

굶주린 매

 

뼈가 드러난 비쩍 마른 매 시렁 위에 서서

하늘 높이 오르려고 두 눈을 두리번거리네

어찌하여 한가한 갈매기나 해오라기처럼

강가 호수에서 먹고 마시는 자유 얻지 못하나

 

 

시에 나오는 굶주린 매는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매가 아닙니다. 주인에 묶여 있는 매입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뼈가 드러날 정도로 비쩍 말랐지만, 언제든 사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눈초리만은 매섭습니다.

 

이상적 선생은 신분으로는 중인이고 관직은 역관(譯官)입니다. 재주는 하늘을 찌르지만 발목에는 신분의 굴레가 채워져 있습니다. 이 시를 보면 모든 걸 내려놓고 농사나 지으며 무지렁이로 살면 되지 왜 못 떠나나하는 자조의 한탄이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浿江舟中(패강주중)

 

渡頭催喚木蘭舟(도두최환목란주)

處處笙歌水上樓(처처생가수상루)

十里東風吹不斷(십리동풍취불단)

綠楊城郭似揚州(녹양성곽사양주)

 

대동강 배 위에서

 

나루터에서 작은 배 재촉하며 부르는데

강가 누각 곳곳에선 생황과 노랫소리

십리 걸쳐 동풍은 끊이지 않으니

푸른 버들 우거진 성곽 양주 닮았네

 

 

이상적 선생은 23세 되던 1825(순조 25) 역과(譯科)에 장원급제합니다. 특유의 성실함과 명민함 덕분에 관리생활은 순조로웠습니다. 통역관으로 중국을 12번 오갔는데, 대부분 책임자인 수역으로 갔습니다. 수많은 공을 세워 벼슬은 역관으로는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까지 오릅니다. ‘지중추부사는 명예직이지만 장관급입니다.

 

 

김홍도가 그렸다고 전해오는 「평안감사향연도」입니다. 새로운 평안감사 부임을 축하하는 잔치를 그린 그림으로 저녁에 뱃놀이 하는 정경입니다. 대동강 너머로 버드나무가 우거진 아름다운 평양성이 보입니다.(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오늘날 이상적 선생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스승인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정조 10)~1856(철종 7)) 선생과의 인연과 추사가 마음으로 건넨 세한도(歲寒圖)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김정희 선생은 세도정치 가문에 밉보여 제주도에 귀양 가 있었습니다. 이상적 선생은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귀양 간 김정희 선생에게 수시로 편지와 책을 보냈습니다.

 

1834(헌종 9)에는 북경에서 구한 계복(桂馥)이 지은 만학집(晩學集)8권과 운경(惲敬)이 지은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62책을 보냈습니다. 이듬해에는 하장령(賀長齡)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120권을 보냈습니다. 모두 조선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입니다. 김정희 선생은 이에 감동해 세한도(歲寒圖)를 그려 이상적 선생에게 선물합니다.

 

 

車中紀夢(거중기몽)

 

坐擁貂裘小睡溫(자옹초구소수온)

依依歸夢訪家園(의의귀몽방가원)

雪晴溪館無人掃(설청계관무인소)

一樹梅花鶴守門(일수매화학수문)

 

수레에서 꿈을 적네

 

따뜻한 담비털옷 여미고 앉아 깜빡 조는데

아렴풋이 꿈결에 고향집을 찾아갔네

눈 갠 시냇가 집엔 눈 쓰는 사람 없고

한 그루 매화와 집 지키는 학만 있구나

 

 

마침 1844(헌종 10) 음력 10월 이상적 선생은 동지사(冬至使) 일원으로 북경에 가게 됩니다. 동지사는 동지 무렵 의례적으로 황제로부터 새해 달력을 받으러 연말에 가는 사절입니다. 이상적 선생은 김정희 선생으로부터 받은 세한도(歲寒圖)를 챙겨 갑니다. 청나라의 문사(文士) 들로부터 제찬(題贊)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국보 제 180호 「세한도(歲寒圖)」. 이 그림은 김정희 선생이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사진 : 국가문화유산포털)

 

위의 시는 사신으로 가는 도중에 지은 시입니다. 이 시는 이상적 선생이 북경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북경의 문사나 관리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곳 지인들에게 편지로 도착을 알리면서 이 시도 동봉했었나 봅니다. 그 뒤 이 시는 북경과 한양의 문사들 사이에서 명시(名詩)로 이름나게 되었답니다.

 

 

『은송당집(恩誦堂集)』과 『우선정화록(藕船精華錄)』 첫 면에 나오는 이상적 선생의 화상(畵像)입니다. 그림은 청나라 황실 궁정화가 오준(吳儁)이 그린 걸 이상적 선생의 아들 이용림(李用霖)이 모사하였습니다. 오준의 호(號)가 관영(冠英)입니다. 사람들은 호를 이름으로 착각하여 오관영이 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사진 : 한국고전종합DB)

 

畫像贊(화상찬)

 

其氣春溫(기기춘온)

其神秋淸(기신추청)

詩成千首酒百觥(시성천수주백굉)

高山大澤深以閎(고산대택심이굉)

使車十度來上京(사거십도래상경)

賢豪長者倒屐爭相迎(현호장자도극쟁상영)

伊川巾東坡笠(이천건동파립)

吾以想先生(오이상선생)

 

淸河吳昆田贊(청하오곤전찬)

闕里孔憲彝書(궐리공헌이서)

 

 

화상에 지은 찬문

 

기상은 봄날 같이 따뜻하고

정신은 가을 같이 맑으네

시는 천 수를 지었고, 술은 백 잔을 마시는데

높은 산 큰 못과 같이 깊고도 넓구나

사신으로 열 차례 북경에 오자

어질고도 호걸스런 장자들이 나막신을 거꾸로 신고 다투어 맞이하네

정이천의 두건과 소동파의 삿갓을 보듯

내가 선생을 생각하노라

 

청하 오곤전은 짓고

궐리 공헌이는 쓴다

 

 

북경에서는 오찬(吳贊), 장요손(張曜孫) 등을 중심으로 이상적 선생과 세한도(歲寒圖)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1845(헌종 11) 음력 113일 북경의 유명 문사 18인과 중국 황실 궁정화가 오준(吳儁) 그리고 이상적 선생 등 20인이 오찬(吳贊)의 집에 모여 세한도(歲寒圖)관람하였습니다. 이날 모임 광경은 오준이 그림으로 그렸는데, 그 그림의 제목이 해객금준제이도(海客琴樽第二圖)입니다.

 

 

세한도를 관람한 중국 문사 18인과 궁정화가 오준(吳儁) 등 19인 약력. (정후수 교수의 『해객금준제이도 제사』 중)

 

이날 모인 문사 18인 중 16인이 세한도(歲寒圖)에 제찬(題贊)를 썼습니다. 그리고 이날 모였던 자신들의 모인 모습을 담은 해객금준제이도(海客琴樽第二圖)에도 18인이 제사(題辭)를 달았습니다. 이것이 해객금준제이도 제사(海客琴樽第二圖題辭)입니다. 드디어 세한도는 스승과 제자의 의리와 사랑, 그리고 중국과 조선의 지성이 합쳐진 거대한 시대의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紙鳶(지연)

 

紙鳶搖曳滿天多(지연요예만천다)

無數街童動似波(무수가동동사파)

操縱謾誇權在手(조종만과권재수)

一絲風斷奈如何(일사풍단내여하)

 

종이연

 

종이연 둥실둥실 온 하늘에 가득하고

무수한 아이들 물결처럼 움직이네

감고 푸는 권세 손에 있다 뽐내지만

한 가닥 줄 바람에 끊기면 어찌하려나

 

 

자신의 손에 모든 권세가 있다고 뽐내는 게 어디 연 날리는 아이들뿐이겠습니까. 세상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권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이 위하고자 하는 무엇이 아닐까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유배 왔을 때 머물렀던 추사적거지입니다. 대문 앞에는 추사 선생이 생전에 아꼈던 금잔옥대 수선화가 가득 심어져 있습니다. 추사 선생과 이상적 선생의 의리와 사랑처럼 수선화는 지금도 향기 풍기고 있습니다.

 

이상적 선생이 살던 당시는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고 아편전쟁이 일어나고, 조선에서는 여기저기서 민란이 일어나던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국제정세에 정통한 이상적 선생은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조정에 보고하였지만 세도정치 세력은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할 뿐 귀기우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오경석(吳慶錫, 1831(순조 31)~1879(고종 16))과 같은 개화파 지식인을 길러낸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요.

 

조선 말의 개화파 관료이자 문장가인 김윤식(金允植1835(헌종 1)~1922)일찍이 선배들이 근세에 시와 문장으로 유명한 사람을 논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우선(李藕船, 이상적)을 첫손가락 꼽는다고 했습니다.

 

이상적 선생이 죽은 4년 뒤인 1869(고종 6) 제자 김석준(金奭準, 1831(순조 31)~1915)은 선생의 시를 추려 우선정화록(藕船精華錄)을 출간합니다. 여기에 유명인들이 이상적 선생을 평한 내용만 추려 이우선선생전(李藕船先生傳)을 엮어 싣습니다. 그 중 몇 구절을 옮겨보겠습니다.

 

시는 금방 피어난 연꽃의 눈과 같고

글씨는 조맹부와 동기창의 뼈대를 얻었으며

문채와 풍류가 사람으로 하여금 심취하게 하였다.

 

 

포천에 있는 이상적 선생의 묘. 부인 설성 김씨와 같이 묻혀 있다. 주소는 경기 포천시 관인면 사정리 754-1

 

이제 목련꽃 피는 봄날입니다. 봄날처럼 따사로움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다정하게 감싸 안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봄날 행복하세요.

 

 

봄이면 온다 하더니

- 박영호

 

누군가 등을 다정하게 감싸 안아

봄이면 돌아온다던

당신인 줄 알았네

뒤를 돌아보니

따스한 봄볕이었네

아지랑이 너머 아른거리는 당신

봄만 먼저 찾아왔네

 

문밖에 기척에 있어

꽃 피면 돌아온다던 당신인 줄 알고

문 열고 나가 보네

휘날리는 꽃잎들과

온 세상 가득한 향기뿐이네

봄이여, 가지 말아라

당신 돌아올 때까지

(박영호 시집 『바람에게 길을 묻다』 문학세계사, 2017)

 

 

[참고문헌]

 

* 이상적 시집 우선정화록(藕船精華錄), 정후수 역, 도서출판 다운샘, 2014

* 해객금준제이도 제사(海客琴樽第二圖題辭), 정후수, 한성대학교출판부, 2012

* 한국고전종합DB

* 국가문화유산포털

*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2023년 3월 11일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