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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李達) 선생의 시 「화학(畵鶴)」에 붙여

 

 

절망(絕望)

- 김수영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速度)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拙劣)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도 오고

구원(救援)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絕望)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전집1 시』 민음사, 1984)

 

 

현재 상태나 습관을 변화시키는 힘은 반성으로부터 나옵니다. 바람은 딴 데서도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건만, 절망은 변화될 가망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입니다. ‘민주자유를 갈망했던 김수영 시인은 4.19 혁명에 환호했습니다. 환호도 잠깐 불과 1년 만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납니다. 이 시가 쓰인 1965년에는 군사독재가 더욱 견고해집니다. 절망은 변화를 거부한 채 완고하게 굳어져만 가는 것 같습니다.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세운 손곡(蓀谷) 이달(李達) 선생을 추모하는 시비입니다. 강원 원주시 부론면 손곡리 1128-3 작은 공원에 있습니다.

 

이번 한시산책에서 소개하려는 시인은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중종 34)~1612(광해군 4)) 선생입니다. 아버지 이수함(李秀咸)은 양반 관리였지만 어머니는 천민인 기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선생은 반쪽 양반입니다. 나중에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이달 선생이 살 때만 해도 서자는 벼슬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양반 체면이니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하기도 힘듭니다. 진퇴양난입니다.

 

아버지가 양반이지만 어머니가 평민인 사람을 서자(庶子)라고 하고, 어머니가 천민인 경우 얼자(孽子)라고 합니다. 이달 선생은 서자 중에서도 얼자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글을 잘 해도, 시를 잘 써도 출세할 수 없습니다. 시기와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게 다행입니다.

 

 

龍津(용진)

 

秋江水急下龍津(추강수급하용진)

津吏停舟笑更嗔(진리정주소갱진)

京洛旅遊成底事(경락여유성저사)

十年來往布衣人(십년래왕포의인)

 

용나루

 

가을 강물은 급하게 흘러 용나루로 내려가는데

나루의 관리가 배를 세우고는 비웃다가 꾸짖네

서울에 드나들면서 무슨 일을 했길래

십년이 넘어가도록 벼슬 한 자리 못 얻었는가

 

 

서울 한양에 10여 년을 들락거렸건만 벼슬 한 자리 못 얻었습니다. 이제는 포구의 하급 관리한테도 비웃음을 삽니다.

 

이달 선생은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허균의 형 허봉(許篈, 1551(명종 6)~1588(선조 21))과 매우 친했습니다. 허봉은 호방한 성품에 글 잘하고, 시 잘 쓰는 당대의 재사(才士)였습니다. 허봉은 이달 선생의 재능을 아껴 동생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으로 들였습니다.

 

 

이달 선생의 시집 『손곡집(蓀谷集)』 중 「화학(畵鶴)」 부분입니다. 『손곡집』은 이달 선생의 제자 허균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허균은 자신을 향한 정적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어져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를 처지에서도 꿋꿋하게 『손곡집』 간행을 추진합니다. 1618년(광해군 10) 허균(許筠)이 평소에 암기하고 있던 이달의 시 200여 수와 홍유형(洪有炯)으로부터 얻은 130여 수를 이재영(李再榮)에게 6권으로 편집하게 하여 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간행 3개월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사진 : 한국고전종합DB)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宣祖, 재위 : 15671608) 시절에는 유학(儒學)의 교훈적인 시풍을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의 감성을 노래하는 당()나라 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운동이 일었습니다. 그 중심에 이달 선생과, 최경창 선생, 백광훈 선생이 있었습니다. 이 세 분을 삼당시인(三唐詩人)이라고 부릅니다.

 

일류 가객(歌客)으로 인정받으면 뭐합니까. 관리가 되는 것이 출세의 전부였던 시대인데, 관리가 될 가망은 아예 없는 걸요.

 

 

畵鶴(화학)

 

獨鶴望遙空(독학망요공)

夜寒擧一足(야한거일족)

西風苦竹叢(서풍고죽총)

滿身秋露滴(만신추로적)

 

그림 속 학

 

외로운 학 한 마리 먼 하늘을 바라보며

밤도 차가운데 한 발을 들고 섰네

서녘 바람이 차갑게 대나무 숲에 불어와

몸에는 가득 가을이슬로 적셨구나

 

 

제목 그대로 그림 속 학을 보고 지은 시입니다. 학은 십장생의 하나로 장수와 부귀를 상징합니다. 또한 높은 인품과 학식을 지닌 선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조선시대 문관의 관복 배와 등에 학을 그린 흉배를 달았습니다.

 

 

경상남도 하동 운암리 운암영당에 봉안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년(순조 33)∼1906년(광무 10)) 선생의 영정입니다. 흉배는 흰 학과 노란 학의 쌍학흉배로, 학의 도상과 오색구름 문양을 묘사하였습니다. ‘면암 최선생 사십사세 진상(勉庵崔先生四十四歲眞像)’이라는 묵서명에 따르면 44세 되던 1878년(고종 15)에 조성된 것입니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513호입니다.(사진 : 국가문화유산포털)

 

학 그림은 보통 소나무와 함께 그립니다. 소나무 가지에 서 있든지, 소나무 아래 있든지요. 아마 이달 선생이 본 그림에도 소나무가 있었겠지요. 그러나 선생은 학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외로운 학 한 마리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귀한 학에 걸맞은 대접은커녕 차가운 밤’, ‘찬바람’, ‘가을이슬만 가득합니다. 이달 선생은 그림 속 학을 보면서 자신을 보는 듯 감정이입을 합니다.

 

 

路中憶蓀谷莊(노중억손곡장)

 

家近靑溪獨木橋(가근청계독목교)

橋邊楊柳弄輕條(교변양류롱경조)

陽坡日暖消殘雪(양파일난소잔설)

料得莎階長藥苗(요득사계장약묘)

 

길을 가다 손곡의 집을 생각하며

 

집 가까이 푸른 시내에는 외나무로 다리를 놓았지

다리 끝의 버드나무는 여린 가지가 간들거렸지

양지쪽에는 햇볕 따뜻이 들어 남은 눈도 녹았겠네

아마도 잔디 뜨락엔 작약 싹이 자라고 있겠지

 

 

이달 선생은 이 시 제목 뒤에 시고죽(示孤竹,)’이라고 부제를 달아놨습니다. ‘고죽에게 보이다란 뜻입니다. 고죽(孤竹)최경창(崔慶昌, 1539(중종 34)1583(선조 16)) 선생의 호입니다. 이달 선생과 동갑이면서 당시(唐詩)를 잘했던 일류 선비입니다. 아마도 최경창 선생과 함께 길을 가다가 문득 원주 부론면 손곡에 있는 자신의 집이 생각난 것 같습니다. ‘푸른 시내’, ‘버드나무 여린 가지’, ‘따뜻한 햇볕’, ‘작약 새싹등 시어만 보더라도 그곳이 얼마나 따뜻한 공간인지 느껴집니다. 저는 이 시를 보고 손곡리를 꼭 가고 싶었습니다.

 

 

강원도 부론면 손곡리 원경입니다. 이달 선생은 이곳 어딘가에서 살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내륙 깊숙이 들어왔지만, 평야가 제법 넓어 맑은 기운이 감도는 곳이었습니다.

 

刈麥謠(예맥요)

 

田家少婦無夜食(전가소부무야식)

雨中刈麥草間歸(우중예맥초간귀)

生薪帶濕烟不起(생신대습연불기)

入門兒女啼牽衣(입문아녀제견의)

 

보리 베는 노래

 

시골집 젊은 아낙은 저녁거리가 없어서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속으로 돌아오네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길도 일지 않는데

문에 들어서니 어린애들 옷자락 잡으며 칭얼대네

 

 

조선의 농촌은 풍요롭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전례 없는 잔혹한 전쟁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농촌은 더욱 피폐해졌을 겁니다. 전 해에 수확한 쌀은 다 먹고 보리가 채 익지 않아 식량이 모두 떨어진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합니다. 이 시는 보릿고개를 표현한 시입니다.

 

이달 선생의 제자 허균은 그의 시 평론집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이 시를 시골 살림의 식량 딸리는 보릿고개 실정을 직접 보는 듯하다고 평했습니다. 그리고는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이 시를 보고 가슴 아파하며 놀라 깨달아, 고달프고 병든 자를 어진 정치로 잘 살게 한다면, 그 교화에 도움 됨이 어찌 적다 할 것인가라고 강조합니다.

 

 

畵梅(화매)

 

擁腫古楂在(옹종고사재)

寒香知是梅(한향지시매)

前宵霜雪裏(전소상설리)

尙有一枝開(상유일지개)

 

 

그림 속 매화

 

늙은 등걸에 울퉁불퉁 혹이 달렸네

차가운 향내로 매화인 줄 알겠어라

간밤에 내린 눈서리 속에서도

오히려 한 가지에 꽃이 피었네

 

 

이달 선생의 시 중에 그림과 관련된 시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당대 최고의 화가 김시(金禔, 1524(중종 19)1593(선조 26))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시를 보겠습니다. 매화나무는 늙어서 굵은 등걸에 울퉁불퉁 혹이 달렸습니다. 늙은 이달 선생 자신을 보는 듯했겠죠. 모진 눈서리 속에서도 한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자신을 보는 듯하여 눈물이 납니다. 선비의 죽음을 이라고 합니다. 삶을 잘 마쳤다고 하여 마칠 ()’ 자를 씁니다. 삶을 잘 마친다는 것은 선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큰 소망입니다. 이달 선생은 늙은 매화나무를 보면서 자신이 일생을 잘 마치고 있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창덕궁 후원 입구 성정각 자시문 앞 400년 된 만첩홍매입니다. 이달 선생의 시 「화매(畵梅)」에 나오는 것처럼 눈서리 속에서 피어나지 않지만, 400년 풍상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참고로 개화시기는 3월 20일 전후입니다.

 

이달 선생에게는 교산(蛟山) 허균(許筠, 1569(선조 2)1618(광해군 10))이라는 특출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허균은 광해군 혼란스러운 시대에 늘 정적들의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시시각각 죽음으로 몰아가는 정적들의 공세 속에서도 허균은 자신이 외우고 있던 이달 선생의 시와 흩어져 있던 시들을 모아 이달 선생의 시집 손곡집(蓀谷集)을 간행합니다. 간행을 마치고 세 달 뒤 마침내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간행이 세 달만 늦었어도 이달 선생의 명시를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허균은 손곡집을 간행하면서 쓴 서문 손곡집서(蓀谷集序)를 통해 스승 이달 선생의 시를 이렇게 찬양합니다.

 

그의 시는 기운이 따사롭고 취향이 뛰어나며 빛이 곱고 말이 담담하며 그 곱기는 절세 미녀 서시(西施)가 성복(盛服)하고 밝은 화장을 한 듯하고, 그 온화함은 봄볕이 온갖 풀을 덮는 듯하며, 그 맑음은 서리 같은 물줄기가 큰 골짜기를 씻어 흐르는 듯하고, 그 울림의 밝음은 마치 높은 하늘에서 학 타고 피리 부는 신선이 오색구름 밖을 떠도는 듯하다.

 

끌어당기면 노을빛 비단과 미풍의 잔물결 같고 깔아놓으면 구슬이 앉고, 옥이 달리며 두드리고 갈면 비파의 애절함과 구슬의 울림이요, 억제하고 누르면 기마(驥馬)가 멈추고 용이 움츠렸고, 그 일없는 때에 천천히 걸음은 평탄한 물결이 넘실넘실하여 천리를 흘러가는 듯하며 태산의 구름이 바위에 대질러 흰 옷도 되고 푸른 개도 되니, 우리나라 여럿 이름난 작가들과 비교하면 그들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 90리나 물러설 것이다.’

 

 

용인에 있는 허균의 무덤.  제대로 가꾸어져 있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보랏빛 엉겅퀴꽃이 혁명가 허균의 넋인 양 지천으로 피어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허균은 정적들의 공격으로 사형 당할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옴에도 스승 이달 선생의 시문집 출간을 서둘렀습니다.

 

멋있죠? 허균에게 이달 선생이, 그대에게 그대 연인이, 우리는 서로에게 환환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일지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일 뿐입니다. 남은 절반이 다른 입장이라 할지라도 당연하듯 인정하는, 그래서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크게 되는 그런 봄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 문태준

 

우리는 서로에게

환한 등불

남을 온기

움직이는 별

멀리 가는 날개

여러 계절 가꾼 정원

뿌리에게는 부드러운 토양

풀에게는 풀여치

가을에게는 갈잎

귀엣말처럼 눈송이가 내리는 저녁

서로의 바다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파도

고통의 구체적인 원인

날마다 석양

너무 큰 외투

우리는 서로에게

절반

그러나 이만큼은 다른 입장

(문태준 시집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2018)

 

 

<참고>

 

* 허경진 역 손곡 이달 시선, 민음사(2022)

* 한국고전종합DB

* 국가문화유산포털

*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2023년 2월 19일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