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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선생의 「한성우사분매증답(漢城寓舍盆梅贈答)」에 붙여

 

 

꽃잎의 사랑

- 이정하

 

​내가 왜 몰랐던가,

당신이 다가와 터뜨려 주기 전까지는

꽃잎 하나도 열지 못한다는 것을.

 

당신이 가져가기 전까지는

내게 있던 건 사랑이 아니니

내 안에 있어서는

사랑도 사랑이 아니니

 

아아 왜 몰랐던가

당신이 와서야 비로소 만개할 수 있는 것

주지 못해 고통스러운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이정하 시집 『혼자 사랑한다는 것은』 명예의전당, 2002년)

 

 

사랑에 어디 높고 낮음이 있겠어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러면 된 거죠. 그런데 말이죠. 우리의 사랑은 가만히 보면 조건적인 것 같아요.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터뜨려 주어야 비로소 만개하는 거죠. 물론 꽃잎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우리 마음이 그렇다는 거죠. 그것에 비하면 옛 사람들의 사랑은 참 직설적이었던 것 같아요. 호방하기도 하고요.

 

 

贈范曄詩(증범엽시)

 

折花逢驛使(절화봉역사)

寄與隴頭人(기여농두인)

江南無所有(강남무소유)

聊寄一枝春(요기일지춘)

 

범엽에게 주는 시

 

매화 한 가지 꺾다가 역사를 만나

농두의 벗에게 보내노라

강남 사람 가진 게 없어

오로지 한 줄기 봄을 보내네

 

 

역사(驛使)는 공문서나 서신을 전달하는 관리를 말합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 송()나라의 육개(陸凱)와 범엽(范曄)은 친한 벗이었습니다. 육개가 강남(江南)에서 매화 한 가지를 북쪽 장안(長安)에 있는 범엽에게 부쳐 보내면서 이 시를 동봉했다고 합니다. 어때요. 짧은 시지만 진한 사랑이, 우정이 바로 느껴지지 않나요. 이 시 때문에 강남에서 매화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보낸다는 뜻을 지닌 강남일지춘(江南一枝春)’은 친구에게 선물이나 정표를 보내 우정을 전함을 이르는 말이 되었답니다.

 

 

2021년 12 월 초 제주에서 일찍 피어난 금잔옥대 제주 수선화 .

 

저는 봄을 참 좋아합니다. 아픈 기억 때문에 겨울을 아주 싫어했었습니다. 싫어했던 만큼 반작용도 커서 봄을 그렇게 좋아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해가 가장 짧아서 이제 길어질 날만 있는 동지를 지나면 저는 봄을 꿈꾸고, 봄을 찾아다닙니다. 동지가 지나면 제주에는 추사 선생이 좋아했던 금잔옥대 제주 수선화가 핍니다. 햇볕 좋은 곳에는 매화가 피기 시작하고요. 서울에는 어떨까요. 창경궁 대온실 옥매(玉梅)11일 전후에 핍니다. 제가 아는 한 서울에서 제일 먼저 피지요.

 

매화는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합니다. 그 때문에 무수한 선비들이 매화를 좋아했습니다. 매화를 좋아하기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연산군 7)~1570(선조 3)) 선생만한 분도 없을 겁니다. 오늘은 퇴계 선생의 매화시를 소개하겠습니다.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

 

獨倚山窓夜色寒(독의산창야색한)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步屧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梅邊行遶幾回巡(매변행요기회순)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휘망기)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도산의 달밤에 매화를 읊다

 

밤빛 차가운데 산창에 홀로 기대니

매화 가지 끝에서 둥근달이 떠오르네

이제 새삼 실바람을 불러올 것 없나니

맑은 향기 저절로 온 동산에 가득한 걸

 

뜨락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따라오네

매화 곁을 돌고 돌아 몇 바퀴나 돌았던고

밤이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날 줄 모르니

향기는 옷에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이 시는 여섯 수()나 되는 긴 시 중 앞의 두 수입니다. 퇴계 선생은 70세까지 사셨으니 옛 사람들 수명으로는 장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늘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별로 없는 벼슬살이보다는 하루라도 더 빨리 안동 도산으로 내려와 후학을 기르는 게 소망이었습니다. 어쩌다 왕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도산에 내려오면 그보다 기쁨이 없을 것입니다. 매화의 향기가 단지 꽃향기로만 느껴지지 않고 학문의 향기, 학문에 용맹정진하는 제자들의 향기로도 느껴집니다.

 

 

창경궁 대온실 옥매 ( 玉梅 ).보통 1 월 1 일 전후에 피는데, 이번 겨울은 초겨울에 기온이 높아 더 일찍 피었습니다 .

 

퇴계 선생은 말년으로 갈수록 왕에게 벼슬을 사양하고 귀향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합니다. 정치보다는 후학을 기르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력에 의해 해를 입었던 가계사의 트라우마도 한몫 했을 겁니다. 처삼촌인 권전(權磌, 1490(성종 21)~1521(중종 16))은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여 핵심 요직인 홍문관(弘文館) 수찬(修撰)이 되었지만 기묘사화와 안처겸의 옥사에 연루되어 곤장을 맞고 죽습니다. 선생의 넷째 형 이해(李瀣, 1496(연산군 2)~1550(명종 5))는 대사헌과 예조참판이라는 고위직을 지냈지만 명종(明宗) 시대 어지러운 정치로 인해 귀양 가다가 죽습니다.

 

퇴계 선생은 한양에 벼슬살이 하면서도 도산의 매화를 그리워합니다. 학문의 향기, 제자들의 향기를 그리워하듯이요.

 

 

憶陶山梅(억도산매)

 

湖上山堂幾樹梅(호상산당기수매)

逢春延停主人來(봉춘연정주인래)

去年已負黃花節(거년이부황화절)

那忍佳期又負回(나인가기우부회)

 

丙歲如逢海上仙(병세여봉해상선)

丁年迎我似登天(정년영야사등천)

何心久被京塵染(하심구피경진염)

不向梅君續斷絃(불향매군속단현)

 

도산의 매화를 그리며

 

호수 위의 산당에 몇 그루 매화꽃이

봄을 만나 간절히 주인 오기 기다리리

지난해 가을에도 국화철 저버렸으니

아름다운 그 기약 차마 또 저버리랴

 

병인년엔 바다 신선 만난 것 같았고

정묘년엔 나를 맞아 하늘에 오를 듯했지

무슨 마음 오랫동안 서울 티끌에 물들어

매군 향해 끊어진 인연 잇지를 못하는가

 

 

이렇듯 한양에서도 퇴계 선생의 매화에 대한 사랑을 줄지 않습니다. 도산의 매화를 그리워하다가 아예 화분에 분매(분재 매화)를 가꾸기도 합니다.

 

 

도산서원 안에 있는 매화원 ( 梅花園 ) 입니다. 퇴계 선생이 매화를 좋아하였기에 지금도 그 정신을 받들어 잘 가꾸는 것 같습니다 .

 

마침내 69세가 되던 1569(선조 3) 32일 임금으로부터 낙향해도 좋다는 윤허를 받습니다. 이번에는 분매와 이별해야 합니다. 분매와 이별을 아쉬워하며 시를 짓습니다.

 

 

漢城寓舍盆梅贈答(한성우사분매증답)

 

頓荷梅仙伴我涼(돈하매선반아량)

客窓蕭灑夢魂香(객창소쇄몽혼향)

東歸恨未携君去(동귀한미휴군거)

京洛塵中好艷藏(경락진중호염장)

 

한성(漢城) 우사(寓舍)에서 분매(盆梅)와 증답(贈答)하다

 

고맙게도 매선이 나를 짝해 서늘하니

나그네 창 말쑥하여 꿈길마저 향기롭다

동쪽으로 돌아갈 제 함께 못 가 서운해라

서울 티끌 속에서 좋이 고움 간직하라

 

 

盆梅答(분매답)

 

聞說陶仙我輩涼(문설도선아배량)

待公歸去發天香(대공귀거발천향)

願公相對相思處(원공상대상사처)

玉雪淸眞共善藏(옥설청진공선장)

 

분매가 답하다

 

도산 내 벗이 서늘하게 있다 하니

공이 돌아오거든 천향을 피우리라

원컨대 공이시여 마주 앉아 생각할 제

옥설의 맑고 참됨 모두 고이 간직하시라

 

 

퇴계 선생의 고향 예안(禮安)은 한양에서 보면 동남쪽입니다. 비록 분매를 함께 데려가지는 못하지만 꿈길마저 향기롭게 했던 그 고움만은 간직하길 당부합니다. 풍진에 찌든 한양이라 마음 놓이지 않지만요.

 

분매의 답변은 당당합니다. 도산에도 내 벗인 매화와 국화가 있다고 하니, 선생도 변함없이 맑고 참됨을 간직하시라. 그들이 나 대신 천향(天香)을 피워주리라.

 

 

이한철(李漢喆, 1812년(순조 12)~1893년(고종 30))이 그린「매화서옥도6폭병풍(梅花書屋圖六幅屛)」 중 일부입니다. 조선 말기에 크게 유해한 매화서옥도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사진 ;국가문화유산포털)

 

이쉽게 이별했던 분매가 1년 뒤 거짓말처럼 도산으로 내려옵니다. 선생이 70세 되던 1570(선조 4) 327일입니다. 이때 지은 시가 서울에 있는 분매를 호사자 김이정이 손자 안도에게 부탁하여 배에 싣고 보내오니 기뻐서 이를 시제로 삼아 한 절을 읊다(都下梅盆好事金而精付安道孫兒船載寄來喜題一絶云)입니다.

 

 

脫却紅塵一萬重(탈각홍진일만중)

來從物外伴癯翁(내종물외반구옹)

不緣好事君思我(불연호사군사아)

那見年年冰雪容(나견년년빙설용)

 

일만 겹 세속의 먼지 벗어버리고

세상 밖으로 따라와 여윈 늙은이 짝해주었네

그대 나를 생각하는 기쁜 일이 인연이 아니라면

어찌 해마다 빙설같은 그대 모습 볼 수 있으리

 

 

참고로 이정(而精)은 김취려(金就礪, 1526(중종 21)~?)의 자()이고 안도(安道)는 퇴계 선생의 맏손자 이안도(李安道, 1541(중종 36)~1583(선조 16))입니다.

 

퇴계 선생은 이 분매가 내려온 그해 128일 돌아가십니다. 124일 아끼던 분매를 다른 방으로 치우게 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내려온 추한 모습을 분매에게 보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128일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앉아서 돌아가십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매화분재에 물을 주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셨다고 합니다.

 

 

퇴계 선생의 묘소. 생가 근처에 있습니다. 퇴계 선생의 유언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정부에서 예에 따라 장례를 치러주었기에 석물들이 격식을 갖추고 있으나 비석만은 아주 간소하게 서 있습니다 .

 

퇴계 선생은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미화를 경계하였습니다. 저는 학자로써 선생을 평가할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선생에 대한 평가는 퇴계 선생이 스스로 지은 묘갈명으로 대신합니다. 스승이신 고전번역원 김성애 선생님이 옮기신 것이기에 그대로 적습니다.

 

 

나면서부터 크게 어리석었고

장성하여서는 병이 많았네

중년에는 어찌 학문을 좋아했으며

만년에는 어찌 벼슬에 올랐던고

학문은 구해도 멀기만 하고

관작은 사양해도 몸을 얽매네

벼슬에 나가서 실패가 많았으니

물러나 은둔함이 바른 도리라

나라의 은혜에 깊이 부끄럽고

성인의 말씀 참으로 두려워라

산은 높이 우뚝 솟아 있고

물은 끊임없이 졸졸 흐르는구나

벼슬 벗고 한가로이 지내니

뭇 비방을 이제야 벗어났네

내 그리운 이 떨어져 있으니

내 패옥을 누가 구경해 주리

내 생각해보니 옛사람이

실로 내 마음을 먼저 얻었네

어찌 후세 사람들이라고

지금의 내 마음 모른다 하랴

근심 가운데에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 가운데에 근심이 있네

조화를 타고 일생을 마치니

다시 또 무엇을 구하겠는가

 

退溪先生 自銘

生而大癡 壯而多疾 中何嗜學 晩何叨爵 學求愈邈 爵辭愈嬰 進行之跲 退藏之貞 深慙國恩 亶畏聖言 有山嶷嶷 有水源源 婆娑初服 脫略象訕 我懷伊阻 我佩誰玩 我思古人 實獲我心 寧知來世 不獲今兮 憂中有樂 樂中有憂 乘化歸盡 復何求兮

 

 

겨울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을 모시는 서원으로 국가사적 170 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2019 년에는 도산서원을 비롯한 9 개 서원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

 

봄은 시속 1km로 북상한다고 했던가요. 이제 남쪽으로부터 꽃소식, 봄소식이 속속 올라올 겁니다. 봄소식에 새해 소망을 담아 보는 건 어떨까요. 제 친구 산오리 곽장영 시인처럼요.

 

 

새해에는

- 곽장영

 

새해에는

속절없이 내리는 눈만큼

하얀 마음을 갖고 싶다.

 

새해에는

귓속을 헤집고 드는 살바람만큼

시린 가슴을 갖고 싶다

 

새해에는

텅 빈 가슴 속에 찾아드는 외로움만큼

꼿꼿한 간절함을 갖고 싶다

 

새해에는

술 취한 머리를 때리는 아픔만큼

성숙한 그리움을 갖고 싶다

 

새해에는

돌배기 어린애 눈 속에 녹아 있는 파도만큼

아름다운 평화를 갖고 싶다.

 

새해에는

갖고 싶다

사람을 그리는

세상을

(곽정영 시집 『가끔은 물어본다』 도서출판 레디앙, 2015년)

 

 

* 참고문헌 : 고전번역원 한국고전DB

 

 

2023년 2월 13일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