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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 있어

여행을 가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오히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여행이 났지 않을까 하는 주변의 권유가 나에게 용기를 줬다.

 

 

 

 

봄을 찾아 나선 여행의 보람은 강릉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안인진에서 점심을 먹고 정동진 옆 등명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보는 일정을 짰다.

안인진 입구에서 얼핏 길옆에 핀 매화를 봤다.

다시 돌아오니 매화가 막 피어나고 있었다.

 

 

 

 

등명해변을 가기 전에 등명낙가사에 들렀다.

 

 

 

 

낙가사에는 동백도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홍매는 이미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붉은판 백매는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등명해수욕장은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정동진이 바로 이웃에 자리하고 있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람이 드물어 고즈넉하고 좋다..

 

 

 

 

울진에 있는 격암 남사고 선생 묘소로 가는 길섶에 홍매가 피어 있었다..

향이 짙어 벌들이 가득했다..

 

 

 

 

격암 남사고 선생의 묘소이다..

 

 

 

 

격암 선생이 나신 곳에는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사당과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은 문이 잠겨 있어 볼 수 없었다..

 

 

 

 

 

 

 

 

 

 

격암 선생 유적지는 공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에도 백매와 분홍 홍매가 피어나고 있었다..

 

 

 

 

기념관 뒤로는 이렇게 멋진 노송도 자라하고 있다..

 

 

 

 

이웃에 있는 논둑에는 봄까치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본래 개불알꽃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이름이 꺼림직하다고 하여 개명하였다..

 

 

 

 

이웃 밭둑에는 산수유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마을 앞에도 이렇게 멋진 소나무가 자리잡고 있었다.

연리목인지, 두 갈래 한 나무인지 가까이 가도 잘 모르겠더라..

 

 

 

 

울진 공항 근처 구산항에 있는 대풍헌(待風軒)이다.

울릉도를 감시하는 수토사가 순풍을 기다리던 곳이라고 한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수토사가 독도를 둘러본 기록이 있다고 한다.

 

 

 

 

대풍헌 뒤에서 본 구산항 모습이다..

 

 

 

 

평해에 있는 월송정(越松亭)으로 갔다..

월송정 근처는 이렇게 멋진 솔밭이 조성되어 있다..

 

 

 

 

드디어 월송정이다..

 

 

 

 

월송정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이다..

아름답다..

 

 

 

 

 

 

바다로 내려왔다..

날이 흐려 푸른 바다에 잿빛이 섞였지만, 흰 모래밭과 잘 어울린다..

 

 

 

 

주차장에는 이런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영덕 영해 괴시리 한옥마을로 갔다..

먼저 목은기념관에 들렸다..

 

 

 

 

목은 이색 선생의 영정이다..

자료로 쓰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빛이 반사되어 아쉽다..

 

 

 

 

선생의 시조를 비석에 새겨 놓았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는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나라가 망해가는 상황에서 무언가 해야겠는데,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지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괴시리 한옥마을을 둘러봤다..

담장 너머로 이렇게 홍매가 피어 있다..

역시 향이 좋아 벌들이 많다..

 

 

 

 

이웃 창수면에 있는 갈암 이현일 선생 생가에 들렸다.. 당대의 대학자로 수많은 제자를 길렀지만, 노론당은 갈암 선생을 거론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갈암 선생 뿐만 아니라 제자들 및 학단 자체를 탄압했다.

 

 

이현일(李玄逸, 1627(인조 5) - 1704(숙종 30))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주요한 인물로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지지하여, 이이(李珥)학파의 설을 비판했다.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 아버지는 시명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安東張氏)로 흥효의 딸이다.

1646(인조 24)1648년 초시에 합격했으나 복시에 응시하지 않았다. 1666(현종 7) 영남유생의 대표로, 효종의 모후인 조대비의 복상(服喪)을 만 1년으로 하자고 주장한 송시열의 기년설을 비판하는 소를 올렸다. 1679(숙종 5) 허목(許穆)의 천거로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1689년에는 산림유현(山林儒賢)에게만 제수되는 사업·좨주(祭酒)를 지내고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헌으로 과거를 실시할 때 승보시(陞補試학제(學製도회·잡과(雜科) 등을 폐지하고 덕행·문예를 중심으로 한 정자학교(程子學校)의 제도와 공거제도(貢擧制度)를 따르는 과거제도의 개혁을 주장했다. 이조참판·찬선을 거쳐 병조참판·우참찬·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추방되자 조사기(趙嗣基)를 신구하다가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고, 다시 서인 안세징(安世徵)의 탄핵을 받아 종성에 위리안치되었다. 1697년 광양으로 이배되었고, 전리방귀(田里放歸)의 명이 내린 뒤 안동의 금양(錦陽)에 집을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 다음백과

 

 

 

 

이웃에 있는 장륙사에 들렸다..

고려말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1376)이 세운 절이다..

나옹화상은 이곳이 고향이다..

 

나옹화상은 일찍 중국에 들어가 인도의 승려 지공(指空)에게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 뒤 고려에 돌아와 공민왕의 스승이 되었다. 화상(和尙)은 수행을 많이 한 승려를 지칭한다고 한다..

 

나옹화상의 시를 한편 보자.

 

 

靑山兮要我以無語(청산혜요아이무어)

蒼空兮要我以無垢(창공혜요아이무구)

聊無愛而無憎兮(료무애이무증혜)

如水如風而終我(여수여풍이종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영덕에 갔으면 대게를 먹어야지.. ㅎ

동광어시장에 가서 대게로 배를 채웠다..

 

 

 

 

 

 

나오는 길에 회를 파는 노점에 들렸다..

2만원어치 회를 샀는데, 다른 곳 5만원어치보다 많은 것 같다..

이고은 횟집.. 기억하시라..

 

 

 

 

영덕의 밤바다는 이렇게 멋있다..

 

 

 

 

다음날 돌아오려고 대문을 나섰는데, 이웃집 담장에 홍매가 활짝 피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망양정으로 길을 잡았다..

바닷가 이름 모를 해변도 이렇게 아름다웠다..

 

 

 

 

 

 

망양정과 망양정에서 본 바다다..

아름답다..

 

급하게 다녀온 봄 여행..

원하는 매화는 실컷 보았다..

 

 

2020년 2월 25일 입력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