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돌아오는 버스에서 녹음이 짙어진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의외로 힘든 일들이 아니라 향기나는 사람들이었다. 외로움이 받쳐서인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음~ 제법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외로운 별처럼, 위태롭게 번식을 이어가는 반딧불처럼 그렇게들 살고 있지만, 한꺼번에 여러 사람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스쳐지나가니 괜히 행복해졌다.
한영식.
그는 얼굴이 떠오른 많은 사람 중 한명이다. 지부장과 지부 간부들이 본조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운동의 대의를 잃어가고 있다고 하여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동지들이 모두 떠난 지부 상집 자리를 유일하게 지키고 있는 동지다.
그는 늘 밝게 웃고 있다. 그 웃음이 난 편안하고, 살갑다. 출장기간 자투리 시간을 내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그와 동행했다. 그의 차편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저녁에 술 한 잔 할까? oo와 함께.’
‘전 같이 못 있겠지만, 술 한 잔 하세요.’
‘왜? 술 끊었어?’
‘아니요~. 집에 가서 애들 봐야 돼요.’
‘왜? 제수씨도 일 나가시나?’
‘아니요. 이혼한지 오래됐어요.’
'...'
‘그래? 언제?’
‘작년 파업 끝나기 직전에요.’
‘애들 나이가 어떻게 돼?’
‘7살, 3살이요.’
가슴이 쨘해지고, 콧등이 시려온다.
지난해 70여일간 파업을 했었고, 파업을 할 때 이미 몇 달 월급을 받지 못한 상태였으니 가정 경제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린 아이들을 남기고 떠난 제수씨를 뭐라 할 처지도 아닌 것 같다. 부디 관계가 좋게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음~ 그런데도 늘 웃음을 머뭄고 다닌단 말이지.
남들 다 떠난 상집을 지키고...
그러고 보니 작년 파업투쟁 때 사진이 생각난다.
거리 행진 대열에 한영식 동지는 아이를 안고 있었지.
음~ 그때 이미 이혼한 상태였구나. 아이의 눈동자가 너무나 가슴이 아파 사진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 사진 밑에 달았던 말이 이랬었지.
“우리와 달리 저 초롱한 아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자.”
<> 아이를 안고 거리행진 하는 한영식. 저 아이가 그러니까 저 때 2살이었구나.
자주관리기업. 자주관리기업은 그렇게 동지들의 피땀과 눈물, 아픔이 모여 만들어진 것인데, 뭐 뜯어먹을 게 있다고 날파리들이 넘쳐난다.
<2006. 6. 29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