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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는 '나'와 '나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전시를 통해서 '나를 보여주는 오래된 전통'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을 찾으셨다면 좋겠습니다.
전시를 준비한 사람들이 관객에게 제시하는 안내글입니다. 내가 중앙박물관의 이 전시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와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가 한 몫을 했습니다. 왕비는 초상화를 통하여 대중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초상화를 그릴 때마다 특별한 연출을 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그 결과는 늘 바라는 바와 반대로 나왔지만 말입니다. 조선시대 초상화의 정신은 '터럭 하나라도 다르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극사실주의, 동시에 인품이 초상 속에 배어 나오게 하는 정신마저 구상화시키려고 했던 사실 정신입니다. 이와 비교하여 서양의 초상화는 어떻게 다를까 하는 호기심이 또 하나의 동인이었습니다.
서양 초상화를 원본으로 본다는 건 우리에세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국내에서 서양 초상화 대규모 전시는 만나기 쉽지 않은 기회입니다. 그래서 6월 26일(토) 전시회를 갔습니다. 그리고 플레시를 쓰지 않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서 더 좋았습니다.
첫 번째 만나는 인물은 영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인 월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입니다. 셰익스피어 생존 시기에 그려진 유일한 초상화라고 합니다. 우리가 책에서 보던 그 초상화입니다. 불빛의 번짐 없이 찍고 싶었는데, 쉽지 않네요..
딜런 토마스(1914~1953)는 웨일즈 출신의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미국 비트 세대 시인과 음악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는 비트 세대를 아래와 같이 정의합니다.
"비트 세대(Beat Generation)는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하여, 민속음악을 즐기며 산업화 이전시대의 전원생활, 인간정신에 대한 신뢰,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요시하였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1920년대의 '상실세대(Lost Generation)'처럼 기성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 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저항가수이며 시인이기도 한 밥 딜런은 딜런 토마스를 존경해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밥 딜런의 원래 이름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Robert Zimmerman)입니다.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 딜런 토머스(류시화 옮김)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노년은 날이 저물 때 타올라야 하고 열변을 토해야 한다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하라
현명한 자들은 끝에 이르러 어둠이 순리인 줄 알지만
자신들의 말이 어떤 번개도 치지 못했기에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가 칠 때 자신들의 연약한 행위가
푸른 바닷가에서 밝게 춤출 수도 있었음을 한탄하며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한다
자유로운 자들은 날아가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했으나
태양은 간다는 슬픈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심각한 자들은 죽음을 앞두고 눈이 멀지만
멀어 버린 눈도 유성처럼 불타며 즐거울 수 있음을 깨닫고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한다
그러므로 당신, 나의 아버지여, 그 슬프고 높은 곳에서
부디 당신의 뜨거운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하시라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시라
빛의 소멸에 분노하고 분노하시라
아이작 뉴턴(1642~1727)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으며,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그는 동시에 사상가이기도 했습니다. 초상을 보면 명민함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통찰력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종의 기원'으로 잘 알려진 진화론자 찰스 다윈(1809~1882)은 생물학자이자 지리학자이고, 철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창조설이 지배적인 시대에 오랜 연구를 통하여 '모든 생물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면서 진화론을 주창합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만큼이나 당시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초상화에서는 총명함과 깊이 있는 사색 그리고 고집이 느껴집니다. 다윈은 죽을 때 "나는 죽음 앞에서 일말의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다"고 유언하였다고 합니다. 부러운 일입니다.
찰스 디킨스(1812~1870)는 '올리버 트위스트'나 '크리스마스 캐롤'과 같은 소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름입니다. 이 초상은 그가 27세 때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표정에서는 총명함과 감수성 그리고 자신감이 묻어납니다.
메리 시콜(1805~1881)은 자메이카 출신의 간호사입니다. 크림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녀는 나이킹게일 간호단에 지원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거부당합니다.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홀로 크림반도 전선으로 달려갑니다. 그녀는 나이팅게일에 못지 않은 활약을 하여 큰 명성을 얻었답니다. 초상화를 보면 가슴에 3개의 훈장이 달려 있습니다. 이는 크림 전쟁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받은 것이랍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이내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다고 합니다.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는 20세기 최고의 미녀로 꼽힙니다. 이 사진은 인물 사진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유서프 카시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영구적인 위엄이 드러나도록 조명 쓰고 세심한 연출을 하였다고 합니다. 귀걸이나 목걸이 등 일체의 장식품이 없는 것도 눈에 들어옵니다.
전 세계적으로 6억 장의 음반을 판매한 위대한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의 데뷔 초기 사진입니다. 왼쪽부터 조지 해리슨, 폴 메카트니, 링고 스타, 존 레논입니다. 이들은 불과 7년 동안 그룹으로 활동했지만, 그들의 영향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에드 시런은 1991년 생으로 지금 한창 활동하는 음유시인이자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의 초상을 본다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그의 초상에서는 통찰력과 감수성 그리고 고집이 느껴집니다.
헨리 8세는 영국의 절대군주입니다. 어쩌면 영국의 첫 번째 절대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대군주를 반대하는 나는 그의 생존년 명기조차 거부하고자 합니다. 그는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아들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6 번의 결혼을 하고, 그 중 2명이 왕비를 사형시켰던 사람입니다. 비호감이죠..
헨리 8세의 염문은 유명하죠. 그 중 앤 블린과의 사랑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천일의 앤'에서 봤던 주인공이 바로 앤 블린입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권력을 이어갈 아들을 열망했습니다. 그러나 왕비 캐서린은 아들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캐서린 왕비의 시녀였던 앤 블린은 매우 섹시한 여인이었습니다. 헨리 8세는 앤 블린에게 엄청난 구애를 했습니다. 왕의 온전한 왕비이고 싶었던 앤 블린의 요구에 따라 헨리 8세는 캐서린 왕비와 이혼합니다. 그러나 당시 캐톨릭은 이유 없는 이혼을 금지했습니다. 결국 앤 불린과 결혼하고자 한 헨리8세는 영국 캐톨릭을 성공회로 독립시키면서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실현시킵니다.
헨리 8세는 아들을 낳기 위해 앤 블린과 결혼하지만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합니다. 앤 블린은 헨리 8세에게 버림 받았고, 끝내 사형당합니다. 죄목은 불륜죄입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설령 사실일지라도 헨리 8세의 아들 집착이 원인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앤 블린의 딸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을 세계 제국으로 올려 놓았지만, 자신은 영국과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평생 비혼으로 보냅니다. 헨리 8세야. 네 딸이 그렇게 사니까 좋으냐??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은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닌 신분으로 영국에서 최초로 최고 권력자가 된 사람입니다. 이른바 청교도 혁명을 통해서 국왕 찰스 1세를 몰아내고 집권했습니다. 갑옷을 입고 지휘봉을 든 모습이나 허리의 장식띠를 묶어주는 시동 등은 왕조시대의 군 통수권을 의미하는 상징이랍니다. 왕조를 전복하고 공화국을 세웠으나 새로운 비전을 세우지 못한 어정쩡함이 초상화에서도 묻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는 보수당 출신의 정치가입니다. 그는 평생 노예제 폐지를 위해 헌신했다고 합니다. 나에겐 낯선 인물입니다. 내가 이 그림에 눈이 끌린 것은 그의 온화하고 이지적인 외모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얼핏 보면 미완성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게 진짜 미완성인지,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고도의 장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넬슨 만델라(1918~2013)는 악명 높은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를 끝내고 흑인 최초로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백인들에 대한 복수 대신에 화합과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을 겁니다. 언제 어디서나 대책없는 강경파가 득세하기 마련입니다. 입으로만 부르짖는 강경책은 제일 쉽게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방해를 뚫고 역사의 발전을 위해 온건한 방책을 세우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넬슨 만델라의 사진에는 깊이 있는 사색과 통찰력을 가진 지혜 그리고 한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 같은 신념이 묻어나옵니다.
루이즈 조플링(1843~1933)은 화가이며 교육자이고 여성 참정권론자였습니다. 당시 여성 화가는 '아마추어'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이런 시선을 뚫고 조플링은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조건에서 교육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성 미술학교를 설립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여성미를 강조하기 보다는 도전적인 포즈를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1997~)는 파키스탄 출신의 여성 교육 운동가입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이 탈레반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자신의 삶과 여성 교육 탄압에 관한 글을 써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2014년에는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후 말랄라 기금을 조성해 모든 소녀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양질의 초중등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고 합니다.
T. S. 엘리엇(1888~1965)은 우리에게 '황무지'라는 시로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그는 평론가, 극작가로도 활동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초상화는 당시 무명이었던 젊은 화가 패트릭 애런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애런은 시인에게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편지를 했고, 시인은 기꺼이 그에 응했다고 합니다. 애런은 시인의 사무실으로 찾아가 스케치를 했고, 그를 바탕으로 3년에 걸쳐 초상화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저는 에밀리 브론테(1818~1848, 그림 중 가운데)의 소설 '폭풍의 언덕'을 완독하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끝내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폭력과 사랑의 경계를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암튼 19세기에 그런 소설을 썼다는 자체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브론테 세 자매 모두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그녀들의 초상화에선 총명함과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모처럼 멋진 전시를 보았습니다. 물론 많은 초상화에 몰입하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박물관에 가기 전에는 우리 그림도 보고 올 계획이었지만 초상화를 보느라 기진맥진해서 포기했습니다. 우리 그림은 다음에 따로 가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2021. 6. 26. 관람
2021. 7. 7. 입력
풀소리 최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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