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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충주시 소태면 복탄리 인다락(人多樂)입니다. 지명이 특이해서 어렸을 때 다른 동네 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람 '인(人)' 많을 '다(多)' 즐거울 '락(樂)' 자를 쓰니 그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동네가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거의 없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하고, 3년만에 돌아가시면서 집이 어려워졌습니다. 5년 뒤인 열 살에 할아버지 마저 돌아가시고, 그 사이 큰아버지 댁 같던 큰집의 재당숙과 재당숙모도 돌아가시고.. 큰집 형제들은 모두 떠나고.. 나도 공부한다고 서울로 떠나고.. 암튼 고향에 대한 기억은 저에게는 한편으로는 이별이고, 또 한편으로는 상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이제는 마음의 아픈 안경이 많이 퇴색했고,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우리 집은 이른바 손이 귀한 집안입니다. 고조할아버지가 세 분의 증조할아버지를 낳으셨지만, 세 분 증조할아버지는 모두 외아들을 두었습니다. 저는 3대 독자이고요.. 또 세월이 흘러 집안일을 책임 지던 종손 형님이 돌아가시고, 둘째 형님도 중풍이 드니 고조할아버지 산소 벌초하는 것도 큰 일이 되었습니다. 돌아가면서 하자고 했는데, 잘난 놈들은 잘나서 안 오고, 못난 놈들은 형편이 안 돼 안 오고.. 에라 이번에는 내가 하자 하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혼자서 넓은 고조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했습니다. 물론 서툴러 깨끝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증조할아버지 산소, 할아버지 산소, 아버지 산소를 차례로 벌초했습니다. 옛날 우리 소유였던 커다란 산에 띄엄띄엄 한 자리씩 잡은 산소라 그냥 다녀오기만 하여도 한 나절 걸리는 거리입니다. 가스 예초기는 가벼운 편이지만, 그것도 짐으로 느껴졌습니다.
벌초를 끝내니 오후 4시 쯤 되었습니다. 8촌 형님 부부가 밥을 해놨다고 오라 하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가 극성이라 들르는 것이 민폐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중하게 사양하고 그냥 집으로 향했습니다. 동네 앞강을 막 지나 언덕을 넘어 차를 세우고 사진 하나를 찍었습니다. 어릴 때 가끔씩 건너가기도 했던 비내섬입니다.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지요..
복여울 엣나루터에는 몇 해 전 복여울 잠수교가 놓였습니다. 다리를 건너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향 동네를 바라보았습니다. 넓은 비내섬 너머로 멀리 어슴프레하게 보입니다. 스산하기만 하였던 과거와 달리 오늘은 그저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앞으로도 그렇겠지요.. 그러면서 나도 땅을 닮아가겠지요..
2021년 8월 28일 방문
2021년 9월 1일 기록
풀소리 최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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