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라는
내 삶을 지탱하던 두 기둥이 내 마음 속에서 무너지면서
나는 마음도 몸도 갑자기 늙었던 거 같다...
과연 존재란 있을까 하는 극단의 허무에서
만약에 0.00001% 만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혹시 있다면...
허무 속에서 핀 꽃이, 유일한 꽃이 아마도 내겐 '운동'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이른바 '운동'이란 어쩌면 '종교'와 같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99.9999%의 허무는
전등불 속에 감춰진 깜깜한 밤처럼 늘 나를 지배했을 것이다...
2.
문득 대학로에 가보고 싶었다.
흐드러지게 피었을 마로니에를 보면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싶었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꽃을 활짝 피운 마로니에
'만의 하나 희망이 있다면' 하고 출발한 삶...
그것은 나를 지배하는 허무를 인정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희망'에 대한 '예의'는 동시에 '허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내겐...
예의를 갖고 사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겠나....
초점 잃은 늙음을 방치해 두지 말아야겠다...
마로니에 꽃은 커다란 나무에 빼곡이 피었다.
오후 마로니에 공원
3.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은
기대했던 대로 커다란 마로니에나무 가득 꽃이 피었고,
보일듯 말듯 은행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여유 있게 오후를 즐기고,
어떤 이들은 데이트를 즐기고,
또 어떤 이들은 남루한 행색으로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
비둘기 수컷/ 집요하게 구애를 하며 암컷을 따라 우리가 앉은 벤치 둘레를 한 바퀴 돌았다.
3.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그곳에는 두 가지의 음악이 흐르고 있는 거 같았다.
오후의 평온과 조화로운 인공과 자연의 아름다음...
그리고 슬픔과 분노...
문득 상반되지만, 너무나 하모니가 잘 어울리는 음악이 들리는 듯 했다.
마치 홍콩누아르처럼...
마로니에 공원 앞 하회탈분수길
2010. 05. 1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