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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토요일(10일) 심상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마을학교(http://cafe.daum.net/maulschool)에서 신년 특강으로 신영복 선생 강연이 있었다. 마을학교에서는 <2009년 희망, 신영복에게 길을 묻다> 라고 제목을 정했고, 신영복 선생은 <성찰과 모색>이라는 강연 제목을 달았다.

 

난 신영복 선생의 글은 꽤 읽은 편이지만 강연은 한 번도 듣지 못했었다. 잘 됐다. 난 내 삶에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 신영복 선생에게 길을 묻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2.

강연은 교회의 커다란 예배당(맞는 표현인가?)에서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커다란 예배당이 꽉 찼으니 말이다.

 

선생의 강연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수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그의 글이 그렇고, 그의 사색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선생의 글에서 늘 기저에 흐르는 것은 '관계', '공존', '성찰' 이런 것 같다. 이날 강연에서도 선생은 이 부분을 많이 강조하셨다. 사람을 한자로 인간(人間)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사람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 사이라는 것은 사람들 간의 '틈'이라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 소통과 같은 관계(關係)를 얘기하는 것일 게다.

이러한 동양의 인간 관념(개념)은 한 사람, 한 사람 존재(human being) 자체로써 사람을 정의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모든 철학과 사상, 사회 제도를 만들어 온 서양과 매우 다른 것이기도 하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은 나아가 이러한 차이를 대립적으로 보시기도 하는 것 같다.

물론 '존재'와 '관계'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관계에 좀 더 의미를 두는 말씀에 나는 많은 느낌이 와닿고, 영감이 생긴다.

 

내 마음 속의 '나'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다른 이의 가슴 속에 비추어진 '나'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 마음 속에 비추어진 '다른 이'도 중요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 있는 '그'도 중요하다.

서로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방이 변하길 강요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도 함께 변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야만적인 폭력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차별과 폭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에 앞선 신영복 선생

 

 

3.

물론 폭력이 일상적으로 횡횡하는 야만적인 자본주의 사회에 내몰려 살고 있는 우리 처지에서 신영복 선생의 말씀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만큼 '무엇' 때문에 그것을 하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강연을 들으면서 70을 바라보시는 선생께서 지금도 맑스가 설파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품고 사시는구나... 그 사랑을 현실화시키려고 끊임없이 애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9. 01. 1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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