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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Triumph」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봅니다

 

 

 

 

미켈란젤로의 「Triumph」입니다.
「Victory」라고도 하고요, 우리말로는 「승리」라고 합니다.

난 이 조각을 실제로 보지는 못하고,
도록(圖錄)을 통해 봤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가 20살 정도 되었을 겁니다.
도록에서 이 조각을 보고
난 한 동안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서른즈음님이 석가탑을 처음 보았을 때
이상의 완벽한 구현을 보고 걸음이 딱 멈춰지고,
같이 간 일행만 없었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그 자리에 있었을 거라고 하셨는데
저도 조각을 실제로 보았다면 아마 그랬을 겁니다.

'승리'라는 제목과 달리
승자의 얼굴에는 승리의 환희가 없고,
패자의 얼굴에는 패배의 비탄이 없습니다.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는 진지한 고뇌만 있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승리이고, 이상한 패배입니다.

(제가 조각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조각입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지양(止揚)이라는 매력적인 용어를 배웠고,
그 단어를 형상화한다면 가장 근접한 것이 아마 이 「Triumph」가 아닐까 했습니다.

패배한 노인은 말할 것도 없이 지나간 것이고, 낡은 것입니다.
승리한 젊은이는 새로운 것입니다.

승리한 젊은이는 패배한 노인과 단순한 대립물이 아닙니다.
그는 노인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모습입니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서 잘못된 것, 모순된 것을
우화(羽化)하는 곤충처럼 낡은 껍질로 벗어 던지고
끝없이 끝없이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것,
새롭게 태어난 것....

그러기에 승리한 젊은이는 정복자가 아니고,
패배한 노인은 낙오자가 아닙니다.
다만, 올바름(정의)에 대한 진지한 고뇌가 있을 뿐입니다.

패배한 노인은 여전히 단단한 근육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정과 머리와 수염은 그가 매우 신중하고 노회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승리한 젊은이는 팽팽한 근육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은 어설픕니다.
그러한 대비에서 이 조각은 승리와 패배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둘은 호흡을 헐떡이지 않고 고요하기만 합니다.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합니다.

우리 당을 보면 요즘 논의, 논쟁이 활발합니다.
진보주의자로서 기본과 품성이 의심스러운 사람들부터
시대를 헤쳐가고자 고뇌하는 글과 주장까지
대단히 큰 편차를 가지고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논의와 논쟁이 활발한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추한 흑색선전과 물타기가 있을지라도,
그것 때문에 논의와 논쟁을 매도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현재의 질곡에 가두고자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논의와 논쟁이 제한없이 펼쳐지는 광장이 없다면
도대체 우리의 사상과 정책을 어떻게 벼릴 것이며,
우리의 의견을 어떻게 일치시켜 나갈 수 있겠습니까.

다만, 바람이 있다면
미켈란젤로의 「Triumph」처럼
현재의 질곡을 벗어나려는 고뇌와 진정성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뚜렸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비록 어쩔 수 없이 모든 대립이 정파의 문제로 환원된다고 하더라도
정파의 문제를 넘어서려 노력하고, 상식의 잣대로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 노력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한 고뇌 없는 대립, 진정성 없는 대립은
결국 필연적으로 소모적이고, 한쪽이 한쪽을 정복하고 굴복시키는 패권적 대립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무기인 사상투쟁은 생산적인 건강성을 잃고,
제로섬게임이 마이너스섬게임으로 전락할 것이고,
민중의 고통을 수반하는 진보주의의 패배로 귀결될 것입니다.

ps. 서른즈음님의 열정과 성실함, 진정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려는 끊임없는 탐구노력이 너무나 부럽습니다.

 

<2005. 1. 22 입력된 것으로 보아 민주노동당 내분이 본격화한 2004년 총선 이후에 쓴 글인 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