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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날 어둠을 검찰 조사실에서 맞으며

 

어제가 동지입니다.
1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입니다.
이날을 경계로 해가 길어지니 엄격히 말하면 새로운 해가 마감되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2달 이상 우울증에 시달려온 저로서는, 저의 우울증 탈출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아내를 봐서라도 어떤 식으로든지 우울증을 탈출하는 계기를 맞이하고 싶었습니다. 동지날이 좋은 꺼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잎새 벗은 앙상한 나뭇가지 가득한 행주산성 덕양산을 보면서 '오늘밤 어둠이 내릴 때쯤부터 새로운 일을 모색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넓은 곳으로 나가 동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는 걸 보면서 뭔갈 한다면 더 좋을 것이고...

오후 1시 검찰에 조사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피의자는 아니고, 부당노동행위 건으로 관련 회사를 고발해놓은 것이 있는데, 고발인 조사였습니다. '고발인 조사이니 잠깐이면 끝나겠지'했는데, 이게 웬걸 꼬박 5시간을 조사받았습니다. 그런 벌도 없더군요.
시간은 지나고 5시가 지나면서 밖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찍 조사를 끝내야 되는데'하고 조바심을 내는데, 사측 년놈들은 헛소리만 합니다.

참고로 고발한 회사 대표는 여자인데, 6월 말 지부(노동조합) 설립 이후 처음 봤습니다.
전 '악마'니 '마녀'니 하는 게 단순히 인간의 상상력의 소산이겠거니 하였는데, 이 여자를 보니까 그게 아니었습니다. 말할 때마다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떠는 게 장난이 아니었고, 조사실에서 '죽이든 살리든, 감옥에 넣든 맘대로 하라'고 대들 땐 '도대체 이 사람들이 믿는 게 뭔가', '검사실에서도 큰소리 칠 정도면 우리 조합원들 앞에서는 얼마나 기고만장일까?'하고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저런 사람은 평생 저렇게 기고만장하게 살아왔겠지?' 하는 생각에 분노가 솟구쳤습니다.

 


어찌됐든 6시가 넘어서야 조사실을 나왔습니다. 조사 담당관의 립서비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여자 처음 봤다면서 처벌하겠다고 합니다.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위안으로 삼으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미 세상은 온전한 밤이었습니다.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전에 다친 꼬리뼈는 5시간 앉아있던 딱딱한 의자에 배겨 저려옵니다.
아내가 분회장으로 당선되었는데, 축하자리도 못 만들고, 몰려오는 고단함에 따뜻한 이불 속으로 퍼졌습니다.

오늘부터 해가 길어지는 날입니다.
'새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해야지!'
별 뜻이 아니라도, 조그만 것에라도 희망을 걸어보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이겠습니까.
사회 전체가 우울증에 빠져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사는날까지는... 사는날까지는...


<2004.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