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용뿔느티나무 고천제
어제.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오전 11시 고양시 산황동 용뿔느티나무 앞에서 고천제를 올렸습니다. 이번 고천제에서는 제가 고천문을 짓고, 낭독했습니다. 고양환경운동연합 조정 의장이 고천문을 짓고, 낭독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고천문이나 축문 등을 지은 적이 없어서 사양했는데, 누구나 처음은 있는 것 아니냐고 꼭 지어달라고 해서 그러마 하고 승낙했습니다.
용뿔느티나무는 고려 말 무학대사가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나무입니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역할을 하였고, 마을 주민은 떨어진 가지조차 땔감으로 쓰지 않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돌봐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 주변 야산에 골프장을 확장 개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주민들이 나무와 산에 대하여 보존운동을 했습니다. 고천제도 그런 보존운동의 일환입니다.
오전 11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평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뿔느티나무를 아끼는 여러 사람이 왔습니다. 그 중에는 배수아 작가도 있었습니다. <파란 사과가 있는 국도> 때부터 나는 배수아 작가 소설을 좋아했었습니다.
이어서 내가 고천문을 낭독했습니다.
고천문(告天文)
유(維) 세차(歲次) 단군기원 4,357년 갑진년 음력 10월 상달 초 8일 용뿔느티나무를지키는시민모임은 감히 하늘과 땅에 고합니다.
용뿔느티나무는 이곳에 자리 잡은 지 어언 600년이 넘었습니다. 무학대사가 심은 세 그루 중 하나라는 전설이 내려오는 영험한 나무입니다. 비록 심은 이는 사람이었지만, 나무는 사람에게 아낌없이 많은 것을 내주었습니다. 노동과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시원한 바람을 불러와 위로했습니다. 마을의 잔치와 기원은 의례 이 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순히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 화합의 상징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이 나무를 더욱 영험하게 여겨 아끼며 지금까지 보존해왔습니다.
이곳을 둘러싼 산황산은 어떻습니까. 비록 높지는 않아도 벌판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어 사람들은 기슭 기슭마다 산을 의지해 마을을 만들어 살았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영원한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디게 하는 땔감의 원천이기도 했습니다. 산이 품어주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벌레와 곤충이 살았고, 각종 새들이 살았습니다. 토끼와 노루, 온갖 짐승이 이 산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많다지만, 천(天) 지(地) 인(人)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의 조화로움 만한 것은 없습니다. 인간이 이곳에 들어와 산 이래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거스르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의 마수가 미치면서 이곳은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몇 사람의 이익을 위해 산과 마을을 갈아엎고 골프장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숲을 파괴하고, 숲에 기대어 사는 온갖 생명들을 내몰고,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의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600여 년 동안 우리 곁을 지킨 용뿔느티나무는 또 어떻습니까. 골프장 건설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잘리어 나갈지도 모릅니다. 설령 살아남는다 해도 골프장에 갇힌 나무가 어찌 마을과 들과 숲을 이어주는 공동체의 구심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이윤만을 탐하는 자들의 정원수로 전락해 능욕당할 것입니다. 한때 당당했던 왕궁이 원수들에 의해 동물원으로 유원지로 바뀌어 능욕을 당한 것과 용뿔느티나무가 받아야 할 능욕이 무엇이 다릅니까. 그 능욕을 나무는 어떻게 견딜 것이며, 또한 사람들은 차마 어떻게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에 고양환경운동연합은 10년 전부터 산황산골프장백지화운동에 함께 했습니다. 산황산과 용뿔느티나무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주변 환경을 정화하고, 언론에 알리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용뿔느티나무를지키는시민모임을 결성해 보다 체계적으로 골프장백지화운동을 이어나가고자 했습니다. 3년 6개월 이상 고양시청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골프장이 백지화되는가 싶었지만, 이윤을 탐하는 자들은 다시금 집요하게 골프장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무심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바른 마음을 따라 그 뜻의 선함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그것을 우리는 대동세상이라고 합니다. 하늘은 무심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그른 마음을 따라 그 뜻의 엄함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바로 지옥 같은 세상입니다. 대동세상을 만드는 것도,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모두 사람들에게 달렸는데 대동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가 어찌 골프장백지화운동, 산황산보존운동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저희는 골프장백지화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하고자 하므로 뜻을 모아 오늘 고천제를 올립니다. 하늘의 선함이 저희를 통하여 세상에 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를 올리오니 조촐한 제물이지만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상향(尙饗)
2024년 11월 8일 행사
2024년 11월 9일 입력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