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도심 속 꽃들의 향연 송현공원에 다녀왔습니다

풀소리 2022. 10. 21. 14:09

저녁 햇살을 빗겨 받은 백일홍이 아름다운 송현공원

 

지난 1019() 송현공원에 들렀습니다. 먼저 다녀온 벗들이 송현공원에 꾸민 꽃들이 너무 예쁘다고 해서 늘 가고 싶었습니다.

 

 

공원 앞에 '열린'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공원은 열린 공간입니다. 굳이 '열린'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 기억 속에 이곳은 미국의 일부였습니다. 젊은 시절 경찰이 삼엄하게 지키는 높은 담벼락 너머는 미국인들이 사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닫힌' 공간이었죠.

 

 

송현공원 안내도입니다. 아래 부분은 안 보이지만 경복궁입니다. 윗쪽이 안국역이 있습니다.

 

송현공원은 경복궁에서 안국역으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고갯마루에 있습니다. 이곳의 역사는 조선 역사와 함께 합니다. 조선왕조 때 경복궁이 들어서고, 동쪽에 궁을 보호하기 위한 완충녹지로 조성된 곳입니다. 소나무를 많이 심어서 솔고개 즉 송현이라고 이름붙인 곳이죠.

 

 

키 작은 코스모스도 이렇게 예쁜 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이 땅에 조선 23대 왕인 순조(純祖) 임금이 둘째 딸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순조 18)~1832(순조 32))와 부마(駙馬, 왕의 사위)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 1819(순조 19)~1853(철종 4))를 위해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백일홍과 코스모스 그리고 키 작은 해바라기들이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그 집은 손자 김석진(金奭鎭. 1847(헌종 9)~1910)이 상속 받습니다. 김석진은 종1품 판돈녕부사까지 오른 고관입니다. 그는 을사조약을 극구 반대했으며, 역적과 함께 조회에 나란히 설 수 없다고 하여 관직을 사퇴합니다. 일제는 김석진에게 남작 작위를 주려고 했지만, 나라를 잃은 것도, 왜국의 작위를 받는 것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이 강제 합병되자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합니다.

 

 

현대화된 건물들 앞에 이런 넓은 공간이 갑자기 생겨나다니.. 오래도록 이 공간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뒤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장인인 윤택영과 형 윤덕영에게로 이 땅의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윤택영, 윤덕영 형제는 철저한 친일파이자 민족 반역자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조선식산은행으로 그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조선식산은행은 조선 토지를 수탈하기 위한 금융지원을 담당했던 은행입니다. 식산은행은 이곳에 직원 사택을 짓습니다.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는 송현공원 풍경입니다.

 

해방 뒤 이 땅은 또 다른 점령군 미국이 차지합니다. 미국은 이곳을 대사관 직원 숙소로 삼았습니다. 미국은 1997년까지 50년 이상 이곳을 점거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 땅은 삼성이 1,400억 원에 불하받습니다. 미술관을 짓기 위해서요. 문화재인 경복궁 옆에 건물을 짓는데 많은 규제가 있어 2008년 삼성은 이 땅을 대한항공에 2,900억 원에 팝니다. 대한한공은 이곳에 한옥호텔을 짓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방치하다가 2020년 서울시에 5,500억 원에 팝니다. 삼성과 대한항공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었습니다.

 

2021111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땅에 삼성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할 미술관을 짓겠다고 발표합니다. 결국 소유권과 관계없이 다시 삼성에게로 넘어갑니다.

 

 

빡빡한 도심에 숨통을 튀우는 넓은 송현공원

 

저는 앞에서 왜 하필 공원 이름 앞에 열린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을까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미술관이 된다고 '닫힌' 공간이 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지금처럼 마냥 '열린' 공간도 아닐 겁니다. '열린'송현이란 앞으로 '닫힐지도 모르는' 송현을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

 

 

2022년 10월 19일(수) 여행

2022년 10월 21일(금) 기록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