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1세대 민중화가 오윤(吳潤) 선생의 묘를 다녀오다

풀소리 2022. 5. 17. 15:49

오윤(1946년~1986년) 선생의 묘를 찾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화가 오윤 선생의 묘.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산 44에 있는 국제공원묘원에 있다.

 

잊은 건 아니지만, 절실하지도 않았나 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첫번 째 답사로 이곳을 찾은 걸 보면  나름 위기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주화운동을 '수입한 이념'이라며 민주화운동 자체를 모독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그 당의 대표는 광주민주항쟁에 '부채감이 없다'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오윤 선생은 해방 다음해인 1946년에 태어났다. 한국전쟁을 유년에 겪었고, 전쟁의 직접적인 포화를 비껴간 부산에서 태어나고 유년을 보냈다. 다행이라 하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완벽한 내적 외적 상처를 남긴 한국전쟁의 유산의 그늘을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좌'냐 '우'냐가 '죽음'이냐 '삶'이냐를 결정했던 말도 안 되는 전쟁시기를 지나도 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4.19혁명으로 자유의 숨통이 트이나 했지만,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모든 '자유'를 질식시키는 독재로 치달아 갔다. 오윤 선생의 젊은 시절은 이러한 시대와 맞닿아 있다.

 

 

작업실에서의 오윤 선생(사진 : CNB저널)

 

오윤 선생은 화가이다. 현실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구현하는가가 1차적인 고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현실'은 너무나 숨막히는 것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당시의 저항시인 김지하를 만났고, 60년대 후반 대학시절 김윤수, 김지하, 오경환, 임세택과 함께 『현실동인전』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전두환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80년대에는 집회에 쓰이는 대형 걸개그림 통일대원도」를 그리는 등 현실참여에 적극적이기도 했다.

 

 

오윤 선생의 대형 걸개그림 「통일대원도」(사진 이미지 : 민중의 소리)

 

현실 참여에 열심이었다고 해서 선생의 그림이 구호에 묻히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 평론가의 평가이다. 평론가들의 평가 이전에 미술시장에서 이미 값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값으로 평가하는 게 불경스럽지만 말이다.

 

 

판화 「칼노래」 - 2021년 『오윤회고전』 서울주문화센터

 

2015년 말 서울옥션 경매에서 추정가 1,500만원으로 올라온 오윤 선생의 칼노래가 4,800만원에 최종 낙찰된 일도 있었다. 물론 오윤 선생의 작품이 경매에서 고평가를 받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애비와 아들」, 1983년(사진 : 국제신문)

 

판화 「춘무인 추무의」, 1985년(사진 : 울산민미협)

 

판화 「봄의 소리」(사진 : 한겨레신문)

 

 

오윤 선생의 판화 몇 점을 보자. 애비와 아들」은 보기만 해도 긴장감이 돈다. 뭔가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놀란 표정이 역력한 애비는 깡말랐으나 다부진 몸매다. 그런 애비도 뭔가 불길한 상황에 놓인 것 같다. 손으로 어린 아들을 감싸 보호하고 있다. 당시 시대가 그런 시대 아니었을까? 

 

그래도 오윤 선생이 그렇게 바랬던 세상은 자유가 넘치는 세상이었으리라. 소수가 전유하는 자유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어울리는, 그래서 만들어지고 지켜지는 그런 자유 말이다.

 

 

오윤 선생 묘소의 빗돌 후면

 

벗 오윤을 추모하며

- 정희성

 

오윤이 죽었다

야속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는 바람처럼 살았으니까

언제고

바람으로 다시 올 것이다.

험한 산을 만나면 험한 산바람이 되고

넓은 바다를 만나면 넓은 바다의

바람이 되고

혹은

칼바람으로

혹은

풀잎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으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1986년 오윤 선생의 장례식에 시인 정희성 선생이 사회를 보던 유홍준 선생에게 건넨 시라고 한다. 제목을 정하지 않고 건네 준 추모시인 것 같다. 그래서 제목은 내가 임의로 정했다. 무례를 용서하시라.

 

추모시처럼 비석처럼 바람처럼 갔으니 바람처럼 왔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람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2022년 5월 17일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