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산책

비록 좁은 집에 살지만 마음만은 탁 트였다오

풀소리 2021. 12. 1. 13:25

장혼(張混) 선생의 시 「答賓(답빈)」에 붙여

 

 

옛길에서 눈을 감다

- 곽효환 
 
어느새 꽃은 지고 울울창창 초록만 우거진
거대한 협곡 아스라한 절벽에 옛길이 있다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곳에
사람 하나 말 한 마리 줄지어 간신히 지났을
길을 내고 그 길로 떠나고 그 길로 돌아온
얼굴이 검은 옛사람
그 사람 간 곳이 없다
물오른 아름드리 버드나무 그늘에 들어
이 길에서 피고 진 오랜 날들을 헤아렸다
질끈 눈 감으니
아득히 물소리 흐르고
길을 버리니 다시 길이 열린다 
 
스스로 깊어지고 스스로 부드러워지는
강과 산과 들과 나무들......
하여 더는 가지 않기로 했다

(곽효환 시집 슬픔의 뼈대, 문학과지성사 2017)

 

 

곽효환 시인은 아마도 차마고도에 가서 이 시를 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래된 땅으로 일명 노년기 지형이라고 합니다. 오랜 풍화를 견뎌서 산은 대체로 부드러운 곡선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차마고도는 중국과 티베트를 잇는 길입니다. 지역이 험준해 해발 4,000m가 넘는 산을 넘는다고 합니다. 까마득한 절벽에 길을 내었으니 보기만 해도 아찔하겠죠. 그러나 그곳을 보지 못한 나는 다만 상상을 할 뿐이고, 어떨 때는 엉뚱하게도 옥류동(玉流洞) 인왕산 자락이 연상하기도 합니다. 바로 조선시대 중인 시인 장혼(張混, 1759(영조 35)~1828(순조 28)) 선생이 말년에 살던 그곳 말입니다.

 

장혼 선생은 그야말로 어느 순간 갑자기 제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중인 신분, 천재적인 시인, 다리를 저는 장애인,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 겸손함 등등이 저에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答賓(답빈)

 

曲折澗道長(곡절간도장)

沙泥行滿屣(사니행만사)

猶勝市陌間(유승시맥간)

須髮結塵滓(수발결진재)

 

白茅十餘屋(백모십여옥)

上帶靑山色(상대청산색)

稍轉衖南頭(초전항남두)

門內雙杏碧(문내쌍행벽)

 

籬角妻舂粟(이각처용속)

樹根兒讀書(수근아독서)

不愁迷處所(불수미처소)

卽此是吾廬(즉차시오려)

 

손님에게 답하다

 

휘돌고 꺾어진 긴 시냇가의 길

걷다보면 모래진흙 짚신에 가득

그래도 세속의 저자거리에서

머리털에 먼지 묻히는 것보단 낫지

 

초가 오두막 십여 채 있고

위로는 푸른 산을 둘렀네

골목 남쪽 어귀 살짝 돌아들면

문 안에 복사나무 살구나무 있다오

 

울타리 곁에선 아내가 절구질하고

나무 밑에선 아이가 글을 읽으니

찾지 못할까 걱정하지 마시오

여기가 바로 내 집이라오

 

 

옥류천 상류 수성동 모습입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나오는 돌다리 기린교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장혼 선생의 집 '이이엄'은 아마도 이 근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장혼 선생은 인왕산 밑 옥류동 골짜기에 집을 짓고 이이엄(而已广)’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이엄이라는 이름에 대하여 선생은 나의 천명을 따르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 집 편액을 이이엄(而已广)이라 했다(聽吾天而已 故扁吾广以而已).”고 밝혔습니다. 이이엄은 당나라 시인 한퇴지의 시구인 허물어진 집 세 칸이면 그만(破屋三間而已)”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답니다. 아무튼 선생은 이 이이엄을 참으로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이 집터를 처음 샀을 때 기록을 보겠습니다.

 

옥류동의 길이 끝나가는 산발치에 오래전부터 버려진 아무개의 집이 있었다. 집은 비좁고 누추했지만, 옥류동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막힌 곳을 없애자, 집터가 10(, 300여 평) 남짓 되었다. 집 앞에는 지름이 한 자 반 되는 우물이 있는데, 깊이도 한 자 반이고, 둘레는 그의 세 곱절쯤 되었다. 바위를 갈라 샘을 뚫자, 샘물이 갈라진 틈으로 솟아났다. 물맛은 달고도 차가웠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우물에서 네댓 걸음 떨어진 곳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여러 사람이 앉을 만했다.”

 

선생의 아버지는 장우벽(1730(영조 6)~1809(순조 9))이란 분으로, 효성과 우애로 유명하였습니다. 통례원(나라의 의식을 주관하던 곳)에서 벼슬을 했지만, 일 년이 못 되어서, “어버이가 안 계시는데, 녹봉을 받아서 무엇하리요!” 라며 벼슬을 버렸다고 합니다. 장우벽은 음악에 조예가 깊고, 노래를 잘 했습니다. 벼슬을 떠난 이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가객(歌客)으로 일생을 보냈습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수성구지(壽城舊址)」입니다. 수성은 광해군 때 지은 자수궁을 가리킵니다. 자수궁은 지금의 옥인동 군인아파트 부근에 있었다고 전합니다. 겸재 정선의 집은 옛 자수궁 터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아마도 집에서 인왕산을 바라보고 그린 것 같습니다. 오른쪽 아래 집 근처에 천수경의 집 송석원이 있었고, 왼쪽 위 기린교 근처에 장혼 선생의 집 이이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장혼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총명하였습니다. 아버지 장우벽은 똘똘한 아들이 중인 신분 때문에 출세에 한계가 있으므로 좌절할까봐 오히려 글공부를 시키지 않았답니다. 다행히 모친이 글을 알아 선생이 9살 됐을 때부터 글을 가르쳤습니다. 늦게 공부를 시작한 선생은 날로 일취월장했습니다. 특히 시()에 천재적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제자인 박윤묵(朴允默, 1771(영조 47)~1849(헌종 15))이 쓴 만시(挽詩)를 한편 보겠습니다.

 

 

挽而已广張翁(만이이엄장옹)2

 

花前月下詠詩長(화전월하영시장)

熟視靑山喜欲狂(숙시청산희욕광)

可愛滿囊皆錦繡(가애만낭개금수)

人間流出久應香(인간유출구응향)

 

이이엄 장 선생을 애도하다

 

달빛 비친 꽃밭에서 읊은 시 뛰어났고

청산을 자세히 보고 미친 듯 기뻐했다네

모아둔 시들 모두 수놓은 비단 같아

세상에 나온다면 오랫동안 사랑받으리니

 

 

장혼 선생은 1790(정조 14) 조정에서 감인소(監印所)를 설치하자 대제학이던 오재순(吳載純)의 추천으로 교서관(校書館) 사준(司準)이 되어 서적편찬에 종사했습니다. 1816(순조 16)까지 근무하면서 사서삼경을 비롯한 수많은 어정서(御定書)를 교정했으며 율곡의 율곡전서등 문집류를 수정·교열해 간행했습니다.

 

장혼 선생은 자신과 같은 중인에 속하는 위항시인들과 더불어 술자리와 시를 즐겼습니다. 1786(정조 10) 여름에 같은 옥류동 근처에 살던 천수경(千壽慶, 1758(영조 34)~1818(순조 18)) 등과 함께 시를 수창하는 모임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를 결성해 중추적 구실을 담당했습니다.

 

 

천수경의 집 송석원터입니다. 송석원은 당대 여항시인들의 중요 활동무대였습니다.

 

송석원시사는 조선 문학사에 중대한 업적을 남깁니다. 송석원시사는 이후 1820(순조 20) 무렵까지 30여년을 존속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이 시사의 중심인물은 천수경(훈장), 장혼(교서관 사준), 김낙서임득명박윤묵(이상 규장각 서리), 서경창(비변사 서리), 최북(화가), 왕태(술집 중노미), 차좌일(만호) 등 주로 중인층이었습니다. 송석원시사 전성기 때는 그들을 따르는 자가 거의 천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장혼 선생은 39세 되던 1797(정조 21) 천수경과 더불어 위항인의 시들을 널리 모아 풍요속선(風謠續選)을 간행하였습니다. ‘풍요란 민요라는 뜻으로 위항인의 시를 낮추어 일컫는 말입니다. 그것은 1737년 간행된 소대풍요(昭代風謠)를 이은 것이었습니다.

 

 

여항시인들의 시를 모아 출간한 『풍요속선』입니다. 천수경과 장혼 선생이 편찬하였습니다.(사진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장혼 선생은 매우 많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특히 아동용 교과서를 많이 썼습니다. 그 중에 계몽편(啓蒙篇)1913년에서 1937년까지 열 차례나 간행될 정도로 아동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문집으로는 이이엄집(而已广集)14권이 전합니다. 또 다른 문집인 비단집(篚段集)20권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혼 선생이 편찬한 책은 호산외기(壺山外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고대로부터 명나라까지의 시가를 수집하고 분류한 시종(詩宗)당률집영(唐律集英)·이견(利見)·아희원람(兒戱原覽)·몽유편(蒙喩篇)·근취편(近取篇)·절용방(切用方)·동습수방도(童習數方圖)등을 간행했습니다. 고문가칙(古文柯則)·정하지훈(庭下至訓)·대동고식(大東故寔)·소단광악(騷壇廣樂)·초학자휘(初學字彙)·동민수지(東民須知)·문단성보(文壇姓譜)·제의도식(祭儀圖式)등이 집안에 소장되어 있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습니다. 현재 전하는 것으로는 이이자초(而已自艸)·동사촬요(東史撮要)가 있습니다.

 

선생이 말년에 지었다고 전해지는 좌우명(座右銘)을 보겠습니다.

 

 

座右銘(좌우명)

 

窄窄茅室(착착모실)

何以息躬(하이식궁)

襟期豁然(금기활연)

霽月光風(제월광풍)

父子天祿(부자천록)

非達非窮(비달비궁)

隨處而安(수처이안)

樂由其中(낙유기중)

 

좌우명

 

좁디좁은 띠집

몸조차 쉴 수 없건만

마음만은 활짝 트여

비 갠 날 달과 바람 같다오

부자가 받은 하늘의 복록이

영달하지도 궁핍하지도 않으니

있는 곳을 편안히 여긴다면

즐거움은 그 가운데서 오리니

 

 

장혼 선생은 순조 28(1828) 향년 7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김조순, 조만영, 이서구와 같은 양반 사대부 뿐 아니라 많은 벗과 제자들이 참여하였다고 합니다. 선생은 죽기 전에 두 자식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남에게 만사(輓詞)도 부탁하지 말고 제문(祭文)도 받지 말라'고 하였답니다. 사후에 터무니없는 말로 자신을 미화시키는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입니다.

 

장혼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대자동 산 155번지에 있다고 전해집니다. 2000년대 초반에 작고한 충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전 교수 안병태 박사님이 1986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마침 그곳이 친구의 옛 집 근처라 친구에게 물어 산을 돌아봤습니다. 그러다 무덤을 하나 찾았습니다. 안병태 박사님의 전언대로 합장한 묘소에 비석도 없었습니다. 맞는지 더 알아봐야겠지만, 일단 나무들을 제거하고 왔습니다. 시인에 대한 예의로 말입니다.

 

 

장혼 선생의 묘로 추정됩니다. 아래 사진처럼 나무들이 자라서 숲이 되어 있었습니다. 봉분 주변 나무들을 제거하고, 봉분에서 자란 진달래 한 포기만 남겨두었습니다. 장혼 선생이 평소 꽃을 좋아하였다고 전하므로 봄이면 진달래가 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세속의 인심은 더더욱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세속의 노골적인 욕구분출이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으로부터도 나오고 있으니 일반 백성이야 오죽하겠습니까. 험한 세상입니다. 그래도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잠든 씨앗을 밀어 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백무산의 시 인간의 시간으로 그분들을 응원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인간의 시간 ​

​- 백무산

 

마른 풀잎 위로 부드러운 빗방울이

깃털처럼 내린다

구름은 산자락까지 내려와

게릴라처럼 주의 깊다

비에 씻긴 바람도 저희들끼리

아주 주의 깊게 착지를 찾는다

개울은 작은 풀씨 하나라도 깨울까봐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시간은 자신의 거처를 몰라 머뭇거린다

나무들도 옷을 벗는다

지난 가을에 외투만 벗은 나무는

마지막 단추까지 푼다

소리없이 안으로 옷을 벗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대지에 무슨 음모가 시작되는가

새들도 숨을 죽인다

언제 명령이 떨어지는가

누가 발진을 지시하는가

시간도 순응하는 시간

일사불란한 지휘계통도 없이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

흙 알갱이 하나하나 수소처럼 가볍다

새들도 숨을 죽인다

대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거역한다

소모와 죽음의 행로를 걸어온,

날로 썩어가고 황무지만 진전시켜온

죽은 시간을 전복시킨다

대지는 단절을 꿈꾼다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순응하는 지휘계통

대지는 이렇게 혁명을 하는 것

잠든 씨 알갱이들과 언 땅 뿌리들을

불러내는 것은 봄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밀어올리는 것

생명의 풀무질을 충만하게 가두고

안으로 눈뜬 초미의 주의력을 늦추지 않는 것

시간과 봄은 생명력의 배경일 뿐

역사가 강물처럼 흐른다고 믿는가

그렇지 않다

단절의 꿈이 역사를 밀어간다

 

 

ps : 이번 한시산책은 연세대학교 대학원 김성은 석사논문 이이엄(而已广) 장혼(張混) 한시연구, 허경진 연세대 교수, 정창권 고려대 교수 등의 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2021. 12. 1.

풀소리 최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