툇마루

파장(罷場)/신경림

풀소리 2018. 2. 14. 15:36

 

사진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4

 

 

파장(罷場)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깍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 신경림 시집 농무 중에서, 1970년 창작과 비평사-

 

 

2012. 01. 31 입력(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