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남도 여행 - 남원, 구례, 하동
아마도 뒤풀이 자리였던 거 같기도 하고요, 암튼 어느날이었어요.
녹차를 딸 겸 남도로 봄마중을 가자고 했죠.
하동에 저희 처갓집 산에 조그마한 녹차밭이 있는데,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작년에는 단 한잎도 못 땄었거든요.
아깝기도 하고, 봄나들이도 할 겸 제가 남도로 가자고 했고, 그 자리에 계시던 대부분이 좋다 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약속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고,
급기야는 녹차잎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는 비보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일을 수정하기 시작하면 정작 계획했던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설령 그 일을 하더라도 처음 계획과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기 일쑤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도 흔쾌히 나선 길동무들이 있었으니, 미루님, 채송화님, 뛰심님, 이녀비님이 그 분들입니다.
4월 2일(금요일) 밤 10시 20분 불광역 부근에서 저녁을 먹은 우리들은 남원으로 향했습니다.
이튼날 아침, 남원을 왔으니 광한루는 보고 가야죠?
신선이 산다는 방장산과 광한루를 뒤로 하고~
광한루를 나온 우리들은 구레 산동 산수유마을로 향했습니다.
다행이 채송화님이 동네를 알아서 우리는 단번에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구레군 산동면 현천마을이 그곳입니다.
산수유마을인 현천마을 전경
산수유마을을 나온 우리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길 중 하나라는 구레-하동 섬진강변길을 따라 화개장터로 갔습니다.
구레-하동 국도에서 본 봄 섬진강
벚꽃은 구레에서는 거의 피지 않고 있었는데, 하동으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피어있었습니다.
화개장터가 가까이 오면서 차가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화개장터에 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쌍계사까지 2십리 벚꽃길이 유명하니 그곳으로 가려는 사람들 참 많은가봅니다.
구레-하동 벚꽃강변길
화개장터를 앞두고 길이 막혀서 우리는 벚꽃길을 걸어서 갔습니다.
막 개화를 시작한 벚꽃, 대숲 그늘이 드리워진 잔잔하고 푸른 섬진강, 연두빛 새잎파리를 한창 빛내는 버드나무들,
누군가 말대로 섬진강시인 김용택이 아니어도 시인이 될 것 같았습니다.
화개장터에서 재첩국을 한 그릇씩 먹고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 평사리로 갔습니다.
최참판댁 입구는 또 차들로 만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최참판댁에 가는 걸 포기하고 대신 악양 너른 벌판으로 갔습니다.
보리가 푸르게 자라고 있는 악양벌판
보리가 자라고 있는 논길을 지나 벌판 한 가운데 두 그루 소나무가 자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주변을 매화나무로 감싸고 있는 섬처럼 생긴 이곳은 한 가운데 무덤이 있었습니다.
잔디 무덤, 두 그루 소나무, 둘레 매화나무, 밖으로는 푸른 벌판. 참 마음이 고운 이들이 조성한 묘역인 거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운영도 보고, 매화도 보고, 우렁이도 보고, 소나무에 기대어 멀리 지리산 연봉을 보기도 하면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처갓집 산 - 부른 나무가 녹차나무지만, 녹차밭은 저곳 건너편에 있습니다.
그래도 녹차밭에는 가봐야지요?
물론 찻잎이 아직 안 나왔다는 소식도 들었고, 가면서 주변에 심어진 녹차들을 유심히 봐왔으나 새잎이 안 나온 것을 본 난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목적지이니까 가야지요. 더욱이 이 산은 저희 장인께서 정성껏 가꾸던 곳인데, 최근 2-3년 동안은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거의 돌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한번 들러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예상대로 찻잎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2주는 있어야 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괜히 곡우차가 아닌가봅니다.
(참고로 곡우는 4월 20일입니다.)
남원 지리산초록배움터
녹차잎 따기에 실패한 우리들은 숙소인 남원 지리산초록배움터로 향했습니다.
하동에서 남원으로 갈 때에는 하동에서 섬진강을 건너 광양 다압면 섬진강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다압에는 유명한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농원이 있는 곳으로 매실축제를 막 마쳤나봅니다.
그래도 청매실농원이 있는 곳은 차량이 빼곡했습니다.
초록배움터에서 저녁을 후딱 해먹고, 뛰심님의 구성진 색소폰 연주에 마추어 술 한잔씩 했습니다.
방으로 술자리를 옮겨 맘껏 노래도 부르며 밤 늦게까지 한잔 더 했습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시작한 밥이 점심이 되었습니다.
밥을 먹었으니 집으로 와야죠?
우리는 우선 선운사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선운사에서
선운사는 동백꽃이 유명하지요.
그런데 그 동백꽃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갔고, 그 길 끝에 있는 김성수의 옛 별장터에 가서 한가롭게 맥주 한잔씩 하면서 풍경을 즐겼습니다.
선운사는 산책길도 참 좋습니다.
선운사를 나온 우리는 변산반도에서 석양을 보자고 했습니다.
서해 일몰
이곳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는 이들이 많은 곳.
우리는 가슴아픈 현장인 새만금 방조제 끝에서 서해의 일몰을 맞았습니다.
인간들의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떨어지는 낙조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었습니다.
결국 2박4일 일정이 되었습니다~ ㅎ
이번 여행은 화려한 남도의 봄도 좋았지만, 함께 한 이들이 더 좋았습니다.
여행을 풍성하게 해 준 함께 한 미루님, 채송화님, 뛰심님, 이녀비님 감사합니다.
2010. 04. 05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