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빙이 흐르는 연미정 그리고 염하
2018년 1월 25일. 연일 강추위로 한강마저 얼어붙은 요즘. 이럴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연미정의 유빙을 보러 떠났습니다.
연미정은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그러나 사연 많은 정자이기도 합니다. 청나라(당시는 후금)가 처음 처들어 온 정묘호란 때 조선과 청나라는 이곳에서 강화조약을 맺었습니다. 청나라가 형, 조선이 동생. 이렇게 1차 굴욕 조약이 체결됩니다.
이보다 앞서 임진왜란 행주산성 전투 때에는 조선의 경기도, 충청도 수군의 주력이 이곳에 결집해 있었습니다. 당시 행주산성 상황은 2-3천 명의 병력으로 3만 이상의 왜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절대 열세. 그러나 이곳에 주둔한 조선 수군은 아무도 후원하러 출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가면 모두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내 조수가 바뀌었을 때 80세의 충청 수사 정걸 장군이 외쳤습니다.
"출정하지 않으려면, 나에게 화살을 모두 달라.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정걸 장군은 배 두 척에 화살을 싣고 조수가 바뀐 조강, 한강을 타고 행주산성으로 갑니다. 이때 행주산성의 조선군은 이미 화살이 모두 떨어져 그 유명한 행주치마 전설을 낳은 투석전으로 맞서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바뀌 조수를 타고 조선군 보급품이 오자 일본군은 전투를 거두고 철수합니다.
저는 행주산성이나 이곳 연미정에 오면 늘 정걸 장군을 생각합니다.
연미정은 월곶돈대 안에 있습니다. 월곶돈대는 이렇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연미정을 보러 온 것은 이렇게 떠가는 어름, 유빙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연미이라는 이름은 '제비 꼬리'를 뜻합니다. 한강이 임진강과 합쳐지면서 조강이 되는데, 조강이 이곳 연미정 앞에서 염하와 갈라집니다. '연미'는 이곳에서 물결이 갈지는 모습이 마치 제비꼬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입니다.
25일은 조수 간만의 차가 별로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인지 흐름이 빠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유유히 흐르는 유빙은 장엄합니다.
보름이나 초하루 또는 그믐 때처럼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할 때 날이 추우면 이곳 유빙의 흐름이 매우 빨라집니다.
이곳은 조강 원류입니다. 강폭이 넓어서인지 이곳의 흐름은 염하 쪽보다 느립니다. 조강 건너편은 북한 황해도입니다.
연미정에 들렀을 때 저는 주차장 옆에 있는 할머니 식당에 들릅니다. 이곳에서 밥을 시키면 할머니가 냄비에 새로 밥을 해서 줍니다. 찌게는 항상 2개가 나옵니다. 생선찌게, 묵은지 김치찌게 이렇게요.. 이번에는 사진을 찍지 않아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올립니다.
할머니 식당 전화번호는 032-933-9377입니다. 밥하는 시간이 15분 쯤 되니, 배가 고프면 미리 전화해서 주문할 수도 있습니다.